- 관리자
- 2018-07-18 0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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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던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역시나 아무런 성과가 없이 끝났습니다.
폼페이오 본인은 ‘회담에서 진전이 있었다, 실무그룹을 조직하고 비핵화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하면서 방북 성과를 강조하려 했으나 북한 외무성은 폼페이오의 방북 후 미북 관계가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흔들 수 있는 위험한 국면’에 직면하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미북 정상회담을 깨버리겠다는 트럼프의 성명에 놀라 황급히 문재인 대통령을 찾아 판문점으로 내려오고 김영철을 워싱턴으로 보냈던 김정은이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마련해 놓았고, 남북·미북정상회담을 통해 초기의 성과를 냈으니 이제는 시간을 가지고 배부른 흥정을 해보자는 자세입니다.
그나마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한이 지금껏 주장해오던 북핵 문제의 ‘단계적, 동시적 해결방안’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은 ‘선 신뢰 환경구축 후 비핵화라는 미북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비핵화 조치의 일환으로 ICBM 엔진 실험장을 폐기하겠으니 미국은 종전선언이라는 ‘등가물’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종전선언을 채택한 후 다음 단계로 제재해제와 평화보장구축과 비핵화를 동시에 논의해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덤으로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을 던져 놓고 있습니다.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하는 보상 조치를 먼저 취했으니 신고와 같은 좀 더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종전선언에로 갈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북한의 입장이 결국 비핵화의 복잡한 이행단계를 만들어 놓고 단계마다 주고받기 식으로 천천히 나가다가 종당에는 비핵화의 종착점에는 가지 않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됩니다.
6.12 미북정상회담 전후로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미국과 북한 사이의 비핵화 문제를 둘러싼 본질적인 입장 차이가 확연해졌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미북정상회담의 정신이 신뢰조성이며 CVID는 강도적인 요구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국가 정상들이 발표하는 합의문의 문구 하나 하나는 물론 문장 순서 자체도 향후 구체적인 이행 과정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작성하는데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동원되며 최종적으로 김정은의 결재를 받아 발표합니다. 그만큼 북한은 문건의 문장과 문구, 순서를 치밀하게 계산해 작성합니다.
6.12 미북정상합의문은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은 담지 못하고, 미국이 수년간 유지해왔던 ‘선 비핵화 후 대화’ 구도를 포기하고 ‘선 신뢰구축 후 비핵화’ 구도를 성문화해 놓았습니다. 앞으로 북한은 미북정상회담의 합의문을 가지고 미국과의 협상 때마다 대화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며 미국이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대북제재라는 큰 협상 카드가 있습니다.
지금 김정은은 북한창건 70돌인 9.9일 전으로 미국과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대북제재도 완화시켜 북한 주민들 앞에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전지전능한 지도자로 나타나 보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과 협상의 모멘텀을 계속 이어가려 할 것입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폼페이오를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하면서 트럼프를 치켜세운 것을 보면 협상의 모멘텀이 깨질가봐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미국이 어떤 전술로 나가는가가 자못 중요합니다.
현재 미국이나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안을 명백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은 남북관계 선행을 비핵화의 유인책으로 쓰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뜻대로 안 되면 제재카드를 더 활용하겠다는 모호한 방안뿐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이번 “미국이 강도적 요구를 했다”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명백한 답변을 주어야 합니다. 미국이나 한국은 종전선언과 바꿀 수 있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기하고 그 요구가 이행되지 않으면 종전선언은 물론 제재해제도 없을 것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미국은 북한에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그 무엇인가 이루어 내보려 한다는 조바심을 보여주어서는 안 됩니다.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힘든 쪽은 북한입니다. 힘들면 대화에 나오고 고비를 넘기면 다시 대화장을 떠나는 것이 북한외교의 속성입니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미국에만 맡겨놓지 말고 북한과의 교류와 협상의 기회 때마다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여 미국을 측면에서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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