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전쟁영웅' 남일, 김정일에 의해 살해
  • 관리자
  • 2017-01-13 10: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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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신화'를 창조해 북한 주민들 속에 '장군'으로 널리 불렀던 남일 대장이 김정일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김일성 호위사령부 출신으로 군(軍) 복무를 했던 탈북자 A 씨는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신화'를 창조한 영웅인 남일 대장이 장군으로 거듭나면서 명성을 떨쳤으나 김정일의 권력야욕에 의한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베일에 싸인 '남일 장군'의 죽음에 얽힌 스토리를 펼쳐놓았다. 

남일 장군은 1914년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어나 1930년 소련의 연해주로 이민을 갔으며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쫓겨간 소련 국적의 재소 한인 중 한 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이다.  

그는 1946년 8월 소련군의 정책에 따라 재소 조선인 전문가 그룹 제4진으로 입북한 다음 김일성을 도와 한국전쟁에 참전한 후 수많은 영웅담을 창조하면서 유명해졌고, 대장으로 고속 승진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1953년 7월 27일 판문점 정전협정 조인식장에 북한 대표로 참석해 승리의 아이콘으로 주민들의 관심 속에 이목이 집중되면서 '남일 장군'으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김일성은 수령이 아닌 일반 군 고위간부를 장군으로 주민들이 호칭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언짢았지만, 소련의 노예국가로 대국의 지시를 받는 상황이라 감히 남일을 건드릴 수 없었다.  

1960년대 중반 수령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노동당 조직비서)와 아들 김정일 간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고, 이 싸움에서 결국 아들에게 손을 들어준 김일성의 지원에 힘입어 김정일이 승리한다. 

김정일은 노동당에 들어와 처음으로 발기한 것이 수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 영도체계를 전당, 전군, 전 국민이 수립하는 규정이었다. 

하지만 남일이라는 존재가 수령의 유일사상과 유일영도 실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전쟁영웅과 '장군'이라는 수식어로 주민의 뇌리에 굳어진 남일을 눈엣가시로 생각하게 됐으며 그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모색한다. 

군 총참모장의 직함을 가졌던 남일 장군은 이 시기 군복을 벗고 정무원 부총리의 중책을 맡고 있었다. 

한편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나라의 경제 발전에서 중요한 부분이 화학공업이라며 평안남도에 신설된 화학 공장을 남일 장군이 직접 맡도록 제안한다.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남일 장군은 월 수차례 화학 공장에 내려가 현지 시찰을 하면서도 이것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 김정일의 음모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1976년 2월 신안주 화학 공장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검은색 승용차가 좁은 산골짜기로 들어설 때였다. 앞에서 국가정치보위부의 번호판을 단 6t짜리 대형트럭이 주저 없이 남일 장군이 탄 승용차에 돌진하면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결국 남일 장군은 유언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김일성의 충복으로, 영웅으로, 장군으로 떠받들던 시대를 멀리하고 작고했다. 

당시 김일성과 김정일은 남일 장군의 사고에 대해 분노를 표하면서 노발대발했으며 공안기관에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하달한다. 

국가안전보위부의 트럭 운전기사는 40대 중반의 민간인으로 공안기관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 고의가 아닌 차체 결함에 의한 사고로 일관한 진술을 반복했다. 

일반 주민에 대해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운전기사들도 1년 정도의 노동교화형을 받던 시기라 남일과 같은 이름난 영웅을 죽인 사람에 대해서는 종신형 내지는 사형이 선도될 것으로 주민들의 인식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사고를 낸 트럭 기사는 두 달 동안 보위부 유치장에 있었을 뿐 이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가 함경북도 명천군 당위원회 조직비서로 둔갑해 평양에서 열린 중앙회의에 참석한 모습이 눈에 띄면서 그를 취급했던 보위부 요원이나 주민들이 의아해했다. 

김정일은 이후 그에게 국가수훈을 수여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열린 대회에도 빠짐없이 참석도록 했다. 

그때에야 비로소 김정일의 지시로 남일 장군이 암살됐다는 파다한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김일성과 김정일 주변을 지켜왔던 탈북민 A씨도 미스터리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일의 음모를 김일성이 몰랐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방치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내용을 보고 독자들이 판단할 부분이다.

훗날 김일성은 김정일에 대한 '위대성'을 강조하는 교양자료에 "나는 우리나라에 또 한 사람의 장군 '김정일 장군'이 있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김일성의 수전노로 한국전쟁의 위훈 담과 전설을 창조했던 공산국가의 남일 이지만, 억울하게 하늘나라로 간 그가 주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독재자는 또 다른 독재자를 낳고 신하는 오직 독재자의 먹잇감으로밖에 될 수 없다"고.

출처 : 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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