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화폐개혁 전과 후
  • 관리자
  • 2010-06-15 11: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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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옷·신발·기름·낙지 우리가 준 구호물품까지…
단속하며 욕하는 보안원 호객행위·다투는 상인들 그 풍경을 이젠 볼 수 없어

북한의 시장(市場)이 작년 12월 단행된 화폐개혁 전후로 급변(急變)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북한 내부 동영상을 조선일보와 갈렙선교회(대표 목사 김성은)가 공동으로 처음 입수, 20일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화폐개혁 이전인 2009년 10월과 이후인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함경북도 온성군 시장과 역(驛) 등을 촬영한 것이다. 온성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투먼(圖們)과 교역이 활발해 시장이 비교적 발달했다.
작년 10월, 북적대는 '정식 매대'… 북한이 화폐개혁(작년 11월 30일)을 단행하기 전인 작년 10월의 함경북도 온성시장 풍경. 지붕을 갖춘‘정식 매대’에 상인과 손님들이 북적이고 있다. 이때만 해도 온성역 주변에 단속을 피해 임시로 서는‘메뚜기 시장’이 성행할 정도로 북한의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갈렙선교회·조선일보 크로스미디어팀
동영상을 보면 작년 10월 온성 시장은 남한 시장처럼 활기가 넘쳤지만 지난 3월에는 몇몇 상인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산한 모습이다.
 
작년 10월 식량·옷·신발·기름·낙지(남한에선 오징어) 등 없는 게 없어 보이던 상점 진열대에는 화폐개혁 석 달 만에 옥수수 1~2포대 정도만 올라와 있다. 특히 동영상에선 우리가 지원한 구호 물품이 온성 시장에 유입된 정황이 확인된다.

북한은 작년 11월 30일 '시장 세력'(시장에서 돈을 벌어 통제가 잘 먹히지 않는 사람)을 누르기 위해 기존 화폐 100원을 새 화폐 1원으로 바꾸는 조치를 강행했다. 그러나 화폐개혁은 실시 이후 상품 공급 부족으로 물가가 치솟아 한 달 만에 실패로 판명됐고, 북한 당국은 지난 1월 말부터 시장 단속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자릿세 안 내는 '길거리 매대'는 단속… 작년 10월 북한 함경북도 온성시장 부근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인민보안원(경찰관에 해당)이 무허가 시장을 단속하면서 욕설을 하고 있다. /갈렙선교회·조선일보 크로스미디어팀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3월 초까지 시장이 황량한 걸 보면 도매상들이 가격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고 물건을 내놓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북한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김일성 생일(4.15)을 앞두고 중국 등에서 들여온 물자 공급을 늘려 지금은 거래가 좀 더 활발해진 상태”라고 했다.

화폐개혁 이전 온성 시장은 지붕을 갖춘 ‘정식 매대’(자릿세 납부) 외에 시장 밖의 ‘길바닥 매대’(무허가 시장)에도 사람이 붐볐다.

 
역전(驛前)에는 단속을 피해 임시로 서는 ‘메뚜기 시장’도 성행했다. 동영상에는 여성 상인들끼리 다투는 장면이 찍혔다. 국수를 외상으로 받아가면서 옥수수로 값을 치르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구경꾼도 여럿이다.
돈은 안 주고 물건 챙기는 보안원… 북한 인민보안원이 작년 10월 함경북도 온성 시장에서 돈도 주지 않고 옷가지를 챙기고 있다. 상인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있다. /갈렙선교회·조선일보 크로스미디어팀
자전거를 탄 인민보안원(경찰)은 무허가 시장을 단속하면서 욕설을 한다. 한 보안원은 돈도 주지 않고 매대 옷가지를 챙겨가지만 상인은 아무런 항의를 못한다. 보안원과 주민(상인으로 보임)들이 골목에서 순대 등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장면도 있는데 “상인들이 술값을 내주고 보안원과 유착한다”(탈북자)고 한다.
 
동영상에 잡힌 당시 상품 가격은 북한 옛 화폐로 운동화 3만원, 헌옷 1만2000~1만5000원, 기름 1㎏ 4500원, 낙지 2500원, 잎담배 1㎏ 500원 등이다. 판매 경쟁이 붙은 상인들은 매대 위에 뛰어올라 호객행위를 하기도 한다.
화폐개혁 3개월 후… 상인 사라진 시장… 북한의 화폐개혁이 단행된 지 3개월여가 흐른 지난달에 촬영한 함경북도 온성시장 풍경. 매대 앞에 상인은 물론 손님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갈렙선교회·조선일보 크로스미디어팀
그러나 화폐개혁 이후인 지난 3월 2~3일 온성 시장은 한산했다. 상인도 주민도 보기 힘들다. 매대 90%가 비어 있다. 시장 구석에서 콩나물을 파는 모녀가 보이는데 1㎏에 100원(새 화폐)이다.
 
옥수수나 쌀을 1~2포대 들고 나온 몇몇 소매상도 있다. 옥수수 1㎏은 300원이다. 김성은 목사는 “당국에 세금을 내는 정식 매대 상인들이 사라지게 됐다면 이는 북한 중산층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준 구호 물품들이 북한 시장에 흘러들어간 증거도 보인다. 시장 여기저기서 대한적십자사 로고가 찍힌 곡물 자루가 발견된다. 일부 주민은 이런 자루를 장바구니로 쓴다.

 
‘대한민국이 보내온 선물’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대형 자루도 보인다. 우리 구호품 자루도 북한에선 인기라고 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우리가 무상지원한 구호물품을 당 간부 등이 빼돌린 뒤 시장에 팔았다는 소문도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하기 전인 작년 10월 함경북도 온성시장에서 상인과 손님들이 흥정을 벌이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로고가 찍힌 곡물 포대도 보인다. /갈렙선교회·조선일보 크로스미디어팀
온성역 풍경도 화폐개혁 이전과 이후가 대비된다. 작년 10월 역 광장에 서 있는 장거리 버스에서 주민들은 부지런히 물건을 내렸다. 한 주민은 차표를 팔아 모은 돈을 신발에 숨기고 있다.
 
한 여성은 자신의 봉투를 가리키며 “미국 쌀”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지난 3월 역 광장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장거리 버스도 보이지 않는다.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붉은 글씨가 적힌 석조물만 눈에 들어온다.

온성군 출신의 한 탈북자는 “시장은 오전 8시 30분쯤 문을 열어 해가 지는 오후 7시쯤 문을 닫았다”며 “쉬는 날 없던 온성 시장이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Nk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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