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거리엔 킬힐 여학생, 짧은 치마 여성이…-동아일보
- 관리자
- 2012-10-04 09:28:59
- 조회수 : 4,647
■ 본보 중국 통신원 ‘김정은 체제’ 북한을 가다
여행 이틀째에 들른 금강산호텔 앞에는 10여 대의 관광버스가 주차해 있었다. 이날 관광객은 내국인과 서양인을 포함해 족히 300명은 돼 보였다. 호텔 1층에는 외국인이, 12층에는 북한주민만 출입하는 가라오케가 있었다. 이곳의 북한인들은 다른 곳에서 본 사람들보다 옷차림이 좋아보였다.
현대그룹으로부터 몰수한 이 호텔은 북한이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지도원은 “이곳은 남조선의 현대그룹이 지은 호텔로 금강산 관광이 끊겨 2년 넘게 운영을 안 하다가 최근 다시 문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현대로부터 시설물을 몰수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금강산을 올라가는 도중에 지도원은 현대가 지은 시설물을 일일이 소개했다. 호텔을 제외한 나머지 상가 등은 여전히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귀국 전날에는 개성과 판문점에 들렀다. 판문점에는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등에서 온 서양 관광객들도 40명가량 있었다. 영어와 중국어가 가능한 안내원들이 통역을 했다. 특이한 건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 안에 놓인 테이블에 서양인과 중국인을 서로 마주 보게 앉힌 것이다. 안내원은 서양인들이 착석하자 “그쪽은 (유엔군이 앉은) 패배석이다”라고 말해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했다.
남한의 재산을 빼앗고 안보 요충지까지 외국인 관광에 개방해 한 푼이라도 더 외화를 벌어들이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금강산호텔의 일회용 물품에는 ‘조선어’만 적혀 있었다. 외국인 투숙객들은 ‘머리 물비누’라고 적힌 샴푸를 어디에 써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 관광지만 벗어나면 옛 모습 그대로
평양이나 금강산 관광특구를 벗어나면 주변의 풍경에서 오래된 가난을 느낄 수 있었다. 농촌 마을은 집이라기보다는 짓다 만 건물이 모여 있는 듯했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간혹 보이는 군용 트럭은 마치 불이 난 듯 검은 연기를 뿜어댔다. 기름이 아닌 목탄을 때기 때문이다. 길가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군인이 염소 떼를 몰고 가기도 했다.
남한인이 아닌 중국인인데도 현지 주민과 일절 접촉할 수 없었다. ‘청량음료’라고 적힌 도로변 간이 매장에서 음료수를 사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주인이 대꾸조차 하지 않았고 곧이어 지도원의 제지가 이어졌다.
호텔에서 내려다본 평양시내는 매우 어두웠다. 반면 주체사상탑은 새벽 3시에도 주변이 환했다. 어려운 전력 사정에도 불구하고 김씨 왕조 체제를 선전하는 시설에는 밤새 불을 켜두는 구태는 여전한 듯했다.
방북 첫날 평양 순안공항에서 일행을 태운 미니버스가 시내로 향하는 도로를 달렸다. 북한 지도원은 왕복 2차로 고속도로라고 했지만 중앙선도 없었다. 20여 분 뒤 ‘선군혁명 사상만세’ 등의 구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내에 군인들이 많았다. 거리의 남자들은 대부분 까맣고 말랐으며 키 160cm가 될까 싶은 왜소한 체격이었다.
숙소는 대동강변의 양각도국제호텔. 외국인용 객실에는 17인치 브라운관TV가 놓여 있었다. 시내에는 20∼30년씩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많았다. 외장 공사가 끝난 105층짜리 유경호텔과 만수대지구 창전거리의 고층 아파트 정도가 이곳이 수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동행한 여행객들은 “대부분의 지역이 개혁개방 전 중국보다 못하다”라고 했다.
○ 강도 높은 우상화 작업
여행 일정에 포함돼 있던 모처의 협동농장 농가를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방학숙제를 하던 중학교 여학생이 있었다. 조악한 노란색 재생용지에 정성껏 적어 놓은 과제물의 제목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대원수님 혁명력사 방학숙제’. 첫 문항은 ‘우리 당과 인민은 왜 (김정일) 장군님을 (김일성) 수령님의 후계자로 높이 모실 것을 념원하였는가’였다.
학생은 ‘혁명위업이 대를 이어가면서 계속돼야 할 장기적인 사업이다. 위대한 장군님은 품격과 자질을 완전무결하게 갖추셨다’라고 썼다. 이어 후계자를 언제 어디서 결정했는지, 김일성의 사상이 어떻게 계승됐는지 등을 묻고 답하는 문제가 있었다. 동행한 중국인들에게 숙제 내용을 알려줬더니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상화는 지난해 12월 사망한 김정일에 집중돼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주민들이 가슴에 패용하는 ‘김일성 배지’는 ‘김일성·김정일 배지’로 바뀌었다. 김일성 이름만 들어 있던 표어나 구호도 김일성 김정일을 나란히 표기하는 식으로 새로 단장했고 평양역 등 대형 건물에는 김일성 사진과 김정일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도 한창이었다. 평양의 지하철역인 부흥역과 원산 등지의 건물에는 ‘선군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구호가 똑같은 것으로 보아 김정은을 찬양하는 표현이 ‘선군조선의 태양’으로 통일된 듯싶었다. 평양 인근의 한 유치원 현관 입구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장군님 고맙습니다’라는 표어를 볼 수 있었다.
지도원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서는 찬양을 늘어놓다가도 김정은에 대해 물어보면 입을 다물었다. 현실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거나 아직 실체가 분명히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북한 평양 중심부에 자리 잡은 105층짜리 초고층 유경호텔. 건설공사는 1987년 시작됐으나 자금난으로 중단됐다가 2008년 재개됐다. 아직 내부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평양=AP 연합뉴스
동아일보 중국 통신원 A 씨가 최근 5박 6일 일정으로 북한 평양과 금강산 등을 둘러보고 왔다. 북한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육상과 항공노선을 통한 관광 상품을 잇달아 개설하고 경제개선 조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변화와 개방의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중국 언론은 9일에 이르는 중추절과 국경절 연휴를 맞아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관광열차가 인기를 끄는 등 중국인의 북한 관광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3일 보도했다.
○ 변화의 조짐들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예상치 않은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평양 시내에서는 ‘킬힐(kill heel·굽높이 10cm 이상인 힐)’을 신은 여학생을 봤다. 무릎 위로 올라온 치마를 입은 세련된 여성이 택시를 잡는 모습도 보였다. “요즘은 저런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고 북측 지도원(여행 가이드)이 설명했다.
○ 변화의 조짐들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예상치 않은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평양 시내에서는 ‘킬힐(kill heel·굽높이 10cm 이상인 힐)’을 신은 여학생을 봤다. 무릎 위로 올라온 치마를 입은 세련된 여성이 택시를 잡는 모습도 보였다. “요즘은 저런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고 북측 지도원(여행 가이드)이 설명했다.
여행 이틀째에 들른 금강산호텔 앞에는 10여 대의 관광버스가 주차해 있었다. 이날 관광객은 내국인과 서양인을 포함해 족히 300명은 돼 보였다. 호텔 1층에는 외국인이, 12층에는 북한주민만 출입하는 가라오케가 있었다. 이곳의 북한인들은 다른 곳에서 본 사람들보다 옷차림이 좋아보였다.
현대그룹으로부터 몰수한 이 호텔은 북한이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지도원은 “이곳은 남조선의 현대그룹이 지은 호텔로 금강산 관광이 끊겨 2년 넘게 운영을 안 하다가 최근 다시 문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현대로부터 시설물을 몰수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금강산을 올라가는 도중에 지도원은 현대가 지은 시설물을 일일이 소개했다. 호텔을 제외한 나머지 상가 등은 여전히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귀국 전날에는 개성과 판문점에 들렀다. 판문점에는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등에서 온 서양 관광객들도 40명가량 있었다. 영어와 중국어가 가능한 안내원들이 통역을 했다. 특이한 건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 안에 놓인 테이블에 서양인과 중국인을 서로 마주 보게 앉힌 것이다. 안내원은 서양인들이 착석하자 “그쪽은 (유엔군이 앉은) 패배석이다”라고 말해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했다.
남한의 재산을 빼앗고 안보 요충지까지 외국인 관광에 개방해 한 푼이라도 더 외화를 벌어들이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금강산호텔의 일회용 물품에는 ‘조선어’만 적혀 있었다. 외국인 투숙객들은 ‘머리 물비누’라고 적힌 샴푸를 어디에 써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 관광지만 벗어나면 옛 모습 그대로
평양이나 금강산 관광특구를 벗어나면 주변의 풍경에서 오래된 가난을 느낄 수 있었다. 농촌 마을은 집이라기보다는 짓다 만 건물이 모여 있는 듯했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간혹 보이는 군용 트럭은 마치 불이 난 듯 검은 연기를 뿜어댔다. 기름이 아닌 목탄을 때기 때문이다. 길가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군인이 염소 떼를 몰고 가기도 했다.
남한인이 아닌 중국인인데도 현지 주민과 일절 접촉할 수 없었다. ‘청량음료’라고 적힌 도로변 간이 매장에서 음료수를 사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주인이 대꾸조차 하지 않았고 곧이어 지도원의 제지가 이어졌다.
호텔에서 내려다본 평양시내는 매우 어두웠다. 반면 주체사상탑은 새벽 3시에도 주변이 환했다. 어려운 전력 사정에도 불구하고 김씨 왕조 체제를 선전하는 시설에는 밤새 불을 켜두는 구태는 여전한 듯했다.
방북 첫날 평양 순안공항에서 일행을 태운 미니버스가 시내로 향하는 도로를 달렸다. 북한 지도원은 왕복 2차로 고속도로라고 했지만 중앙선도 없었다. 20여 분 뒤 ‘선군혁명 사상만세’ 등의 구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내에 군인들이 많았다. 거리의 남자들은 대부분 까맣고 말랐으며 키 160cm가 될까 싶은 왜소한 체격이었다.
숙소는 대동강변의 양각도국제호텔. 외국인용 객실에는 17인치 브라운관TV가 놓여 있었다. 시내에는 20∼30년씩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많았다. 외장 공사가 끝난 105층짜리 유경호텔과 만수대지구 창전거리의 고층 아파트 정도가 이곳이 수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동행한 여행객들은 “대부분의 지역이 개혁개방 전 중국보다 못하다”라고 했다.
○ 강도 높은 우상화 작업
여행 일정에 포함돼 있던 모처의 협동농장 농가를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방학숙제를 하던 중학교 여학생이 있었다. 조악한 노란색 재생용지에 정성껏 적어 놓은 과제물의 제목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대원수님 혁명력사 방학숙제’. 첫 문항은 ‘우리 당과 인민은 왜 (김정일) 장군님을 (김일성) 수령님의 후계자로 높이 모실 것을 념원하였는가’였다.
학생은 ‘혁명위업이 대를 이어가면서 계속돼야 할 장기적인 사업이다. 위대한 장군님은 품격과 자질을 완전무결하게 갖추셨다’라고 썼다. 이어 후계자를 언제 어디서 결정했는지, 김일성의 사상이 어떻게 계승됐는지 등을 묻고 답하는 문제가 있었다. 동행한 중국인들에게 숙제 내용을 알려줬더니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상화는 지난해 12월 사망한 김정일에 집중돼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주민들이 가슴에 패용하는 ‘김일성 배지’는 ‘김일성·김정일 배지’로 바뀌었다. 김일성 이름만 들어 있던 표어나 구호도 김일성 김정일을 나란히 표기하는 식으로 새로 단장했고 평양역 등 대형 건물에는 김일성 사진과 김정일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도 한창이었다. 평양의 지하철역인 부흥역과 원산 등지의 건물에는 ‘선군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구호가 똑같은 것으로 보아 김정은을 찬양하는 표현이 ‘선군조선의 태양’으로 통일된 듯싶었다. 평양 인근의 한 유치원 현관 입구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장군님 고맙습니다’라는 표어를 볼 수 있었다.
지도원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서는 찬양을 늘어놓다가도 김정은에 대해 물어보면 입을 다물었다. 현실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거나 아직 실체가 분명히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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