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서 ‘국영’이 살아남는 법? 사(私)경제에 편승하라
  • 관리자
  • 2017-05-04 06:54:47
  • 조회수 : 1,699
[2017年 청진 영상②] “道 운영 공장, 돈주에 건물 임대…‘때밀이’ 개인 목욕탕 등장에 국영 울상”


북한에서 사(私)경제가 활성화면서 역으로 국영경제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돈주(신흥부유층)를 비롯한 개인 사업자들이 주민들의 수요와 선호를 고려한 장사로 수익을 창출할 동안, 국영기업은 그저 당국의 관리 하에서 수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데일리NK가 단독 입수한 북한 청진시 영상(3월 초 촬영분) 속 대형 국영목욕탕 ‘수남 은덕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함경북도 당국이 운영하는 은덕원은 목욕탕을 포함, 이발소와 미용실, 각종 식사설비까지 마련해둔 채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온수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손님 발길이 뚝 끊긴 지 오래라는 후문이다.
반면 돈주들이 운영하는 개인 목욕탕들은 그야말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주민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인민무력부(군) 산하 강성무역회사 소속 ‘청진상점’이다. 이곳엔 돈주가 운영하는 개인 목욕탕과 청량음료 매점 등이 들어서 있는데, 국영목욕탕에 비해 온수도 잘 나오고 한증설비도 갖춰져 있어 손님이 그칠 새 없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함경북도 소식통은 최근 데일리NK에 “국영 목욕탕에선 온수가 나오지 않아 찬물을 바께스(양동이)에 담아 소형석탄 난로에 데워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갈탄연기와 탄내가 말도 못하게 심해서 되도록 국영 목욕탕은 찾지 않으려는 주민이 많다”면서 “하지만 개인 목욕탕에는 화력 좋은 벽난로도 설치돼 있어 뜨거운 물이 항시 콸콸 나와 좋다”고 전했다.
국영 목욕탕에선 경험할 수 없는 소위 ‘때밀이 서비스’ 역시 개인 목욕탕이 인기를 끄는 데 한몫하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개인 목욕탕에선 야간이면 ‘때밀이 여공’들이 나타나 ‘때밀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에 북한 돈주들은 물론 당 간부들까지 저녁 무렵 개인 목욕탕을 찾아 피로를 풀고 간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물론 ‘특급 서비스’가 제공되는 만큼 개인 목욕탕 이용료는 국영 목욕탕 이용료를 크게 웃돈다. 북한 돈 기준으로 개인 목욕탕 대중탕은 2000원 내외, 독탕은 5000원~1만 원 상당으로 알려진다. 이는 은덕원 이용료보다 1000~1500원 정도 더 비싼 금액이지만, 청결한 목욕을 원하는 주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소식통은 “청진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장사로 돈을 번 주민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시장 원리로 돌아가는 개인 목욕탕 같은 곳도 무탈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면서 “간부들이나 돈주들도 국영 목욕탕 출입 때와 달리 개인 목욕탕에선 공민증(주민등록증)을 보여줄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 사업자들이 고객 확충에 한 발 앞서가는 추세가 계속되자, 아예 국영으로 세워진 건물을 돈주들에게 임대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국영경제가 사경제에 의존하는 현상까지 등장한 것이다. 청진 화학섬유공장 건물 한 편에도 ‘수지·늄(알루미늄)창제작’이란 간판이 들어섰다. 개인이 수지창과 알루미늄 창을 제작하는 기업소를 공장 건물을 임대해 운영하는 것이다.
국가 소유의 건물을 돈주들이 운영하는 기업소에 빌려주는 ‘임대업’은 김정은 정권 들어 특히 성행하는 추세다. 돈주들은 신규 부지를 승인 받아 새 건물을 지어 기업을 운영하는 데 비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고, 당국으로서도 ‘파리 날리던’ 건물을 빌려주고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소식통은 “돈주들이 당 간부들에게 일정 금액을 바치고 국영 건물을 임시로 빌려 자신들의 기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국영 건물 임대는 공식적으로는 불법이지만,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당 간부들은 건물을 빌리겠다는 돈주가 나타나면 발 벗고 나설 정도”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어 “건물 임대료는 지급할 돈이 달러인지 내화(북한 돈)인지, 그리고 지급 시기는 언제로 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북한 시장화는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전후로 당국의 제한적 허용 하에 전개되는 듯 보였지만, 지금 오히려 국영경제가 사경제를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시장화가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데 이어, 이제는 국영경제 역시 사실상 사경제를 통해 유지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민들 사이에서도 ‘시장의 원리’에 따라 장사가 이뤄지는 문화가 더욱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으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국영경제가 사경제에 편승해 유지되는 상황까지 온 이상 섣불리 시장 단속 및 통제에 나서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소식통은 “이전까지는 대형 건설 사업이나 편의 봉사는 국가적 사업으로 취급됐지만, 지금은 이런 분야에까지 시장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면서 “국가 자체를 개조한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돈주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거나 주민들이 ‘당(黨)’ 대신 ‘돈’을 중시하는 추세가 체제 균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시범겜(본보기)’ 차원에서 돈주나 장사꾼들을 대상으로 매를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사경제의 활성화에 따라 각종 기발한 돈벌이 수단이 등장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공식 종합시장인 수남시장에 들어가지 않은 주민들은 시장 뒷골목 등지에서 개인 장사로 돈벌이에 나선 모습이다. 이를 테면 ‘돌사진’을 제작하는 장사꾼이 눈에 띈다. 말 그대로 돌 위에 얼굴 사진을 새겨 판매하는 일이다.
소식통은 “시장 형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법적인 측면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보안원(경찰)들은 새로운 장사활동 형태가 등장하면 처음에는 ‘비법(불법)이다’고 단속하다가도 언젠가 부터는 적당히 뒷돈(뇌물)을 받고 무마하곤 한다”고 말했다.
청진 외화상점 앞에는 불법 환전꾼들도 상시 대기 중이다. 소위 ‘환치기’ 수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로, 몇 년 새 인원이 부쩍 늘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이들은 상점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외화가 필요한 주민과 마주치면 눈치껏 다가가 환전을 해준다. 장마당 시세에 따라 매일 같이 환율이 바뀌기에 유지 가능한 ‘알짜배기 직업’인 셈이다.
소식통은 “굳이 외화상점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주민들은 되도록 조선(북한) 돈 보다 외화를 비축해놓으려고 하고 있다”면서 “2009년 화폐개혁을 겪으면서 조선 화폐 가치가 추락하고 외화가 버젓이 유통되기 시작한 데 따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데일리NK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