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1-11-09 07: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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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지난달 8일(현지시간)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온 두 사람의 용감한 싸움을 높이 평가해 1935년 이후 86년 만에 언론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이다.
베리트 라이스 안데르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사실에 기반한 저널리즘은 권력 남용과 거짓말, 전쟁 선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며 “민주주의와 항구적인 평화의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두 사람의 노력에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북한에도 이런 용기 있는 언론인이 나올 수 있을까.
지난 1945년 11월 1일 창간돼 올해로 76주년을 맞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체제 선전을 전담하는 당 선전선동부 직속 기관이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인 2012년 1월 1일 직접 노동신문사를 찾아 소속 일꾼들을 “우리 당의 귀중한 보배들”이라고 치하하면서 당성 강화를 주문했다.
이후 중앙당 선전선동부는 각 중앙, 지방 언론사의 일꾼, 기자, 문필가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교양하고 대대적인 개인 사상검토에 들어갔다. 이는 새로운 김정은 시대에 체제 선전의 나팔수로 맨 앞장에 설 자격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이른바 ‘용광로 시험’이었다.
2013년 노동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던 문모 기자(남, 당시 50대)는 이 시험에서 탈락해 민주조선사, 평안남도일보사로 좌천을 거듭했고, 결국에는 국가보위성의 관리 대상으로 처리됐다.
북한에서는 기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그렇게 어렵게 기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오로지 당의 사상과 정책을 기준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기사를 쓸 수도 없으며, 써서도 안 된다는 것은 북한의 기자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다.
평소 줏대가 있고 직설적이었던 문 기자는 2012년 중반 진행된 당 사상검토에서 ‘뾰족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아 민주조선사로 좌천됐다. 그러나 그곳의 텃세에 못 견뎌 또다시 지방에 있는 평안남도일보사로 내려가게 됐다.
문 기자가 뾰족한 사람으로 평가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설사 당 정책을 기준으로 쓰고 싶은 글을 쓴다 해도, 12번의 검열 절차를 거치면서 결국 내 좋은 소재의 글은 실리지 못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간부들과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었다.
실례로 문 기자는 2012년 태양절 100주년 계기 대사령과 관련해 전국 교화소의 사면 대상자들을 취재하고 글을 여러 건 올렸지만, 편집부에서 모두 반려돼 단 한 건도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범죄 이력이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당보에 실을 수 없다는 게 편집부의 설명이었다.
문 기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대사령을 받고 감격에 겨운 교화소 출소자들의 소감을 소재로 한 글 몇 개를 지방 일보사에 있는 지인에게 보냈으나, 역시 실리지 않자 당보에 실을 수 있는 글은 한정적이고 기자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 씁쓸함과 답답함을 드러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2일 제8차 당 대회 보도를 접한 노동자들이 생산을 다그치고 있다고 반향을 전했다. 사진은 중구역에서 당대회 보도가 담긴 노동신문을 읽고 있는 주민들. /사진=노동신문·뉴스1
이런 반골 기질에 뾰족한 사람으로 평가된 문 기자가 돌연 위험분자로 추출돼 국가보위성 산하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가게 된 결정적 요인은 좌천돼 간 평안남도일보사에서 자신이 맡지도 않은 분야의 취재를 다니면서 각종 자료를 수집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주로 취재한 대상들은 구류돼 있다가 나온 출소자들이었고, 취재 내용은 법관들의 태도나 발언, 작풍 문제들이었다. 문 기자는 당과 대중을 이탈시키는 법관들의 태도 문제를 심각한 현상으로 보고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속해 있는 신문사에서 연재가 안 된다면 노동신문사에서 활동하던 시절 알고 지낸 중앙의 책임 있는 간부를 통해 이런 행태를 알려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가 법관들에게 피해를 봤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법관들의 태도를 분석하고 이를 자료로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방의 끈끈한 인적 연결고리를 통해 법관들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었다. 법관들 입장에서 심히 거슬리는 행동을 한 문 기자는 결국 간첩으로 몰리고 말았다.
실제 국가보위성은 문 기자가 글을 쓴다면서 이런 자료들을 모으고, 취합한 정보를 남조선 괴뢰들에게 팔아넘기려 했다면서 그를 체포해 갔다. 보위성은 평안남도일보사 당위원회에 ‘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언론인 대열에 잠입해 간첩 행위를 시도하기 위한 자료를 축적하는 불순행동을 감행한 죄’라고 체포 이유를 밝혔다.
특히 북한은 이후 전체 언론인 사상강습자료에 문 기자의 사례를 담고 “혁명적 수양이 부족하고 당성 단련을 게을리한 일부 시대의 낙오자들이 언론인 대열에 끼어들어 당 정책을 오도하다 못해 이적 행위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면서 그를 간첩으로 낙인찍었다.
기자정신을 발휘해 사회 부조리를 밝히려다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문 기자의 말로는 북한 언론의 현주소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금도 북한은 주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 채 ‘신문혁명’, ‘보도혁명’, ‘방송혁명’, ‘출판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당과 수령에 대한 언론의 무한한 충성심을 요구하고, 언론인들을 어용 나팔수들로 철저히 준비시키고 있다.
지난 7월 국경없는기자회(RSF)는 김정은을 ‘전 세계 언론자유 약탈자(predator)’ 37인에 포함하고 “언론이 당과 군부, 자신을 찬양하는 내용만 전달하도록 통제한다”고 지적했다. RS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북한이 늘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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