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북한 달력에 9월 21일은 추석(한가위)라고 쓰였고 빨간날로 국가적 휴식일로 표기됐다. 북한 주민들에게 추석은 생일 다음으로 오로지 본인과 가족들만을 위한 유일한 ‘가족 명절’이다.

남한처럼 ‘민족의 대이동’은 없다

북한 주민들은 추석날을 한해 지은 햇곡식으로 정성껏 음식을 지어 조상을 찾아보는 날로 여기고 있다. 청신한 가을날 산에 올라 술도 마시고 조상에 대한 덕담도 나누면서 가족들 사이에 우의를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이 추석에 주민들에게 산소를 찾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통행증 제도가 존재하는 체제 특성상 지방이나 먼 고향에 조상 묘를 두고 찾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여기서 북한은 추석 당일 평양과 국경지역 등 승인번호, 여행증 발급 필수 지구를 뺀 지방은 통행증 없이 다닐 수 있게 하기는 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추석날과 일요일 모두 ‘휴식’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다만, 남한처럼 ‘추석 연휴’라는 말은 북한에는 없다.

당일 하루를 쉬니 당연히 ‘차량 정체’는 찾기 어렵다. 사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을 철통같이 닫고 최고 비상방역을 선포한 북한은 올해 추석을 혁명적으로 간소히 쇨 것을 당부한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세대(가정)마다 식량 사정은 턱없이 악화됐다. 추석에도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칠 정도’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나오고 있다는 후문이다. ‘가까운 산소에 쌀밥 한 그릇, 술 한 병 차고 올라가 벌초나 하고 내려오자’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니 ‘민족의 대이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추석 상차례 음식, 잘살고 못사는 순위로 나뉜다

북한의 상차례 음식에는 녹두전, 팥전, 부침개, 닭, 떡류, 산나물채, 콩나물, 밤, 대추, 사탕, 과자를 비롯한 당과류, 과일 등이 꼽힌다. 여기에 조상이 생전에 즐겨 들던 음식도 올린다.

생활 수준에 따라 상차례 음식도 차이 난다. 여기서 넉넉지 않은 주민들은 쌀밥 한 그릇 마련하기도 어렵다. 올 추석에는 더욱 힘들어졌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북한 주민들은 추석날 먼저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점심을 맞춰 묘소에 올라 주변을 벌초한다. 평양시를 비롯한 일부 지방에서는 묘소 주변 가장 가까운 오래된 소나무나 바위의 밑을 파고 음식과 술을 묻는 풍습도 있다.
성묘가는 북한 주민들. /사진=강동완 교수 페이스북 캡처

묘소도 ‘신분 차이’ 따지는 북한…가난한 백성은 외곽으로 쫓겨난다

김정일 시대 ‘도로와 기찻길이 가까운 곳의 묘소들은 평토(平土)하라’는 당적 지시가 내려졌다. 산소 봉분을 땅과 평평이 맞추고 비석을 눕히라는 황당한 방침이 하달되기도 했다.

당시 당국은 ‘방방곡곡 보이는 산마다 높은 묘들이 가득해 나라의 기운이 눌리운다’는 주장도 내세웠다. 그렇게 북한 당국은 봉분을 낮출 데 대한 당적 지시를 1호(김정일) 방침으로 제시하고, 시한을 정해 시행하지 않은 세대주들을 조직별로 비판대에 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통제에 따라 1~2년 사이, 고속도로와 기찻길에서 보이는 산에는 봉분 높은 묘소가 사라졌다. 북한식 집단주의가 또 한 번 ‘기적(?)’을 일군 셈이다.

그러나 대성산 열사릉, 신미리 애국열사릉, 해외동포 애국자묘를 비롯해 국가적으로 허락된 특수대상은 예외였다. 기존 같이 ‘세운 비석’을 쓰도록 했다.

북한 당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평양시와 지방 주요 도시들부터 화장(火葬)하는 관습을 일반화하라’는 지시도 하달했다. 이후 현재까지도 평양시에서는 오봉산화장터(락랑구역)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일이 흔해졌다.

심지어 당국은 평양시 기존 묘지들을 전부 교외로 옮기도록 했다. 이제는 일반 주민들은 평양에 묻힐 수 없게 된 셈이다. 이는 김정은 시대도 이어지고 있어 평양을 ‘좋은 기운이 도는 혁명의 수도’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은 ‘우리 인민들이 앞으로도 영생하시는 대원수님들을 평생 뵐수 있게 하자’며 평양시내 가장 풍치수려한 금수산기슭에 ‘금수산태양궁전’에 미라로 안치했다. 그것도 모자라 주민들을 참배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게 바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올해 당 강령으로 내세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민낯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올해 추석 명절에 교외로 성묘가는 평양 시민들을 위해 저렴한 요금으로 버스를 제공하는 등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 백성들의 조상은 기운이 안 좋아 교외로 강제 옮기도록 하고 김씨 가문 조상은 기운이 좋아 수도에 그대로 잘 안치돼 영생 보존하고 있다’는 비아냥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