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가요 ‘림진강’ 개사해 부른 평양 간부·돈주 자녀들
  • 관리자
  • 2020-05-28 13: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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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내의 목란비디오 CD판매대(기사와 무관).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최근 평양의 간부와 돈주(신흥부유층) 자녀들이 북한 가요를 개사해 ‘풍요로운 남조선(한국) 경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혐의로 보안서(경찰서) 예심장에 구류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이 대중가요와 영화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한 사상 이완을 경계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사건이라는 점에서 평양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는 전언이다.

28일 평양 소식통에 따르면, 동평양 제1중학교에 재학 중인 15세 학생들이 최근 요란한 생일파티를 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보안원들이 수사에 착수했다. 동평양 제1중학교는 평양에서도 수재(手才)들이 가는 명문학교로 알려져 있다.

애당초 보안국에 신고가 들어온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차단을 위해 당국이 모임 자제를 명령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명의 학생이 한 장소에 모여 장시간 생일잔치를 벌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조사 중 학생들이 파티에서 ‘림진강(임진강)’이라는 가요를 개사해서 부른 것으로 확인돼 참석자 전원이 보안국 구류장으로 이송됐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림진강’은 1957년 북한에서 만들어진 노래로 박세영의 시에 고종한이 곡을 붙여 만들었다. 박세영은 일제 강점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소속돼 활동한 공산주의자로, 해방 후 월북해 북한 애국가를 작사한 인물이다. 그는 후에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기도 했다.

‘림진강’의 1절은 ‘내 고향 남쪽땅 가고파도 못가니’ 등 박세영이 월북한 후 남쪽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 곧 현 체제에 대한 불만과 남쪽에 대한 동경을 뜻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됐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2절에서 박세영의 공산주의적 정치 성향이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남쪽의 메마른 들판과 북쪽 협동농장의 풍년을 대비시켰다. 남쪽보다 북쪽의 경제상황이 훨씬 앞서고 있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림진강’ 원래 가사(左)와 북한 청소년들이 개사한 가사(右). /그래픽=데일리NK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바로 이 구절이다. 생일파티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가사의 북쪽과 남쪽(그쪽)을 바꿔 ‘북쪽땅 갈밭에선 갈새만 슬피울고/ 메마른 들판에선 풀뿌리를 캐건만/ 그쪽벌 이삭바다 물결우(위)에 춤추니/ 림진강 흐름을 멈추지는 못하는가’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원래 의미와는 180도 다른 뜻으로 불렀다는 것으로, 열악한 북한과 대비되는 한국의 경제력을 인지하면서 남북의 경제적 차이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학생들을 수사하던 보안국도 이를 사상적 문제로 판단하고 즉시 참석자들을 이송했으며 강제 삭발 지시도 하달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문제는 이 학생들이 모두 돈주 혹은 간부 자녀라는 점이다. 현재 부모들은 강력 반발하며 자녀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현지 분위기를 소개했다.

한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영화나 노래를 흥밋거리로 향유하는 청년들을 비판하며 “영화와 노래에도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 침투 책동이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날 ‘사상문화진지를 백방으로 다지는 사업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한 편의 영화, 노래 한 곡도 각성있게 대하지 못하고 멋없이 흉내 낸다면 썩어빠진 부르죠아(부르주아) 생활풍조가 만연할 것”이라며 “청년들의 사상 교양 도수를 높이기 위해 방탄벽을 더 높이 쌓을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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