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1-01-19 08: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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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만 제대로 가동되면 정부에서 안 도와줘도 인민들이 알아서 잘 살 수 있다. 우리가 시장에서 잘 벌어먹는 게 배 아파서 시장이 망가지도록 정부가 봉쇄령을 내린 것 같다.”
지난 11월 갑작스러운 봉쇄령으로 집안에 갇혀 있던 양강도 혜산시의 한 주민의 이야기다. 최근 혜산 주민 김 모 씨는 “봉쇄 후 시장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며 당국이 시장을 없애기 위한 선조치로 봉쇄령을 내린 게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봉쇄령이 시장에 미친 영향이 컸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혜산은 봉쇄 후 식용유, 설탕, 조미료 등 중국산 물품의 가격이 봉쇄 전보다 최소 2배 이상 급등했다. 봉쇄로 장사 수입이 끊긴 주민들은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구매력도 크게 저하됐다.
그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언제 또 봉쇄령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식자재를 시장에 내다 팔기보다는 비축해 두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혜산 주민의 전언이다. 봉쇄 후 시장 매대에 올라오는 물건의 양이 대폭 축소되면서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8월 중국에 살던 북한 주민이 삼지연을 통해 불법 입국하자 코로나19 유입 방지를 이유로 삼지연시와 혜산시 전체에 봉쇄령을 내렸다.
중국발 불법 입국자 한 명 때문에 시 전체를 봉쇄한 것에 대해 내부에서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며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당국은 삼지연과 혜산 주민의 이동은 물론 물자 운송도 전면 차단시켰다.
그러나 당국은 11월 초 또다시 혜산에 봉쇄령을 내렸다. 양강도에서 주둔하는 국경경비대 소속 보위 지도원과 군인 한 명이 경계 근무 중 밀수를 시도한 사실이 발각되자 무장한 채로 도강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차 봉쇄 때 당국은 혜산시 주민들에게 20일간 직장 출근을 금지한 것은 물론이고 집 밖으로도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1차 때보다 강력한 명령을 내린 셈이다.
혜산의 경우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금지 조치에도 빈번한 밀수가 이뤄지자 당국이 다른 지역보다 강도 높은 봉쇄 조치를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민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씨는 “밀수꾼들 때문에 시(市) 전체를 봉쇄한다는 것은 핑계”라면서 “코로나 확진자가 없다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역 차원의 봉쇄가 아니라 당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한 조치였다는 불만이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민심이 들끓자 당국은 11월 봉쇄 때 주민들에게 세대당 옥수수 5kg을 공급했지만 이마저도 물량이 부족해 감자로 대치됐다. 처음에는 봉쇄령 하달과 동시에 세대당 쌀 10kg이 공급된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무상 배급이 아니라 시장 물가보다 싼값으로 당국이 쌀을 판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양강도 풍서군 두만강변에 설치된 북한군 초소(2019년 2월 촬영). / 사진=데일리NK
봉쇄로 인한 주민 피해는 상당했다. 압록강에 접근이 완벽히 차단돼 빨래나 목욕물은 물론이고 식수조차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하루 이틀은 전기가 오면 TV도 보고 집안에서 주패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면서도 “(그러나) 물도 없고, 먹을 것이 떨어져 가는데도 속수무책으로 집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봉쇄 기간 경계 강화를 위해 파견된 군인들의 무차별 폭력과 도둑질 때문에 주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한다. 주민들의 이동이 금지된 틈을 타 군인들이 창고에 보관해 둔 식료품들을 훔쳐갔다는 신고가 줄을 이었지만 이에 대한 당국의 보상 대책도 없었다.
특히 식량이나 땔감을 비축해두지 않은 주민들이 굶어죽거나 동사(凍死)하는 일이 속출했고 응급 환자들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고 한다. 김 씨는 “생활이 어려워 집을 내 놓은 사람도 많아졌다”며 “혜산동에서 한 가족이 집을 팔고 마지막 한 끼를 잘 차려 먹은 뒤 쥐약으로 자살한 세대도 있었다”고 말했다.
봉쇄 이후 경제적 타격은 물론 사회 분위기도 경색되자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도도 하락하고 있는 양상이다. 김 씨는 “최고존엄(김정은 국무위원장)에서 최고를 빼고 존엄이라고만 부르는 게 유행이 됐다”며 “요즘 사람들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존엄이 핵무기로도 비루스(바이러스)는 못 막나보다’는 비판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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