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민위
- 2023-03-10 07: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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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절 영화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뒤 월북해서도 최고 여배우 지위를 이어갔던 문예봉(1917∼1999)이 북한 선전매체에서 새삼 조명됐다.
9일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공개한 '통일화보 1호'(2023년 1-2월)는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 우리나라 영화 예술인들 속에는 문예봉 선생도 있다"며 그의 일생을 회고했다.
191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한 문예봉은 함흥여자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마찬가지로 배우 출신이었던 아버지 문수일에 의해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무용을 배웠다.
1932년 무성영화 '임자없는 나룻배'로 영화계에 데뷔한 뒤 국내 최초 발성영화 '춘향전'(1935)에 출연해 인기배우가 됐다. 이후 '장화홍련전'(1936), '나그네'(1937) 등 여러 편의 영화에 여주인공으로 나서 당대 최고의 여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예봉은 1948년 극작가 남편 임선규와 함께 월북한 뒤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북한 최초 영화 '내 고향'(1949)을 시작으로 '빨치산 처녀'(1954), 북한 최초의 민족고전물 '춘향전'(1958), '성장의 길에서'(1966) 등에서 여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1952년 '빨치산 처녀'로 공훈배우 칭호와 함께 국기(國旗)훈장 제3급을 받았다. 이 영화는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된 영화로 남한 내 빨치산의 게릴라전을 영웅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1961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북측본부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돼 활동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복고주의자, 감상주의자, 허무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안주 협동농장으로 추방됐다가 1980년이 돼서야 영화계로 복귀했다는 설이 있다.
1982년에는 최고 명예인 인민배우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김일성·김정일에 충성했던 옛 배우의 삶을 조망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화보는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께서는 여러 차례 그를 만나시어 연기를 잘한다고 치하해주시었으며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친히 그의 연기 형상 방도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고 언제나 젊음에 넘쳐있으라고 사랑의 보약까지 보내주시었다"고 설명했다.
문예봉이 1999년 3월 세상을 떠났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애도의 뜻을 표시해 고인의 영전에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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