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북한 인권 결의안 '기권' 입장 바꿀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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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10 16: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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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자: 서보혁 박사(2003년부터 2년 6개월 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 담당 전문위원)
발언장소: 프레시안 기고문 http://www.pressian.com/
발언일시: 2006년 11월 14일
주요발언내용
1.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인권상황에 관해서도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가 서로 다른데, 직접적 사실 확인이 곤란한 북한의 경우를 단정으로 말하는 것은 과도하고 무리한 평가라 할 것이다.
2. 그러나 여기서 묻는 것은 유엔 인권위와 총회의 북한인권 결의가 인권의 ‘보편성’을 담보할 만큼 공정햐냐는 문제다.
3. 북한 인궐 결의안 '기권' 입장 바꿀 이유 없다

<원문>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한국의 선택

현재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제61차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이 상정되어 이번 주 말경 표결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인권 결의는 지난 2003~5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3년 연속 채택되었고 작년에는 유엔 총회에서도 처음 채택된 바 있다.

이번 유엔 총회에 상정된 북한인권결의안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을 주축으로 37개 국이 발의했다. 여기에는 미국, 일본,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다. 3쪽 분량의 결의안은 북한이 4개 국제인권규약 가입국인 점을 포함해 그간 북한의 조치에 주목한다고 밝히고 있다. 결의안은 이어 북한의 인권상황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광범위하게 열악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문, 공개처형, 강제노동, 여성·아동의 권리 침해, 납치문제 등이 언급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결의안은 북한정부에 인도적 지원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할 것 등을 촉구하고, 차기 총회에서도 북한인권 상황을 다루기로 결정한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결의안은 작년 유엔 인권위와 총회의 결의 내용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번 결의안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유럽연합 의장국(금년은 핀란드)에서 초안을 작성한 후 회원국 및 관련국에 회람해 의견을 수렴하고 상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나타나든지 예년의 경험을 볼 때 북한인권 결의안은 절대적인 숫자로 통과될 것이다.

결의안 찬성의 논리와 그 비판

국내에서는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의 입장을 둘러싸고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논란을 벌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정부 안팎에서 지지하자는 의견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지 논리를 몇 가지로 제시하며 그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필자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도적 개입이 필요할 정도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결의안 지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우리사회의 중도원로들이 만든 '화해상생마당'의 14일 성명에서도 이 같은 언급이 발견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인권상황에 관해서도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가가 서로 다른데, 직접적 사실 확인이 곤란한 북한의 경우를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과도하고 무리한 평가라 할 것이다. (물론 여러 증언을 통해 북한의 인권상황이 그런 우려를 자애내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기존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도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가 행해지고 있다는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금번 북한인권결의안은 과거의 결의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생존권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없이 분배의 투명성만 언급하고 있다. 결의안은 또 유엔 총회가 두 차례(1984, 1986년) 결의한 바 있지만 서방 선진국 혹은 핵보유국의 반대로 국제인권규약이 되지 못한 평화권, 개발권에 대한 언급이 없이 자유권에 편중되어 있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둘째, 인권은 보편적이고 북한인권 역시 예외가 아니므로 유엔의 우려에 동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인권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북한인권을 논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묻는 것은 유엔 인권위와 총회의 북한인권 결의가 인권의 '보편성'을 담보할 만큼 공정하냐는 문제다.

유엔 인권위원회나 총회와 같은 헌장기구(charter body)는 인권전문가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각국 대표로 구성된다. 이들 헌장기구에서 인권문제를 다루는 일차적 판단기준은 자국의, 혹은 국가간 이해관계이기 때문에 보편성의 원칙이 준수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광범위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서 유엔 인권위는 한번도 결의안을 상정한 바 없다. 또 중국 역시 인권침해가 심각함에도 불구함에도 결의안이 상정될 경우 중국과의 무역·외교관계를 의식한 대다수 투표국들은 결의안을 부결시켜 왔고, 최근에는 결의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아 왔다. 즉 유엔 총회와 인권위(올해부터 인권이사회로 격상)는 그 구조상 한계로 인해 인권의 보편성을 수호하지 못한다.

셋째, 한국의 국가이익 증진을 위해서도 정부는 북한인권 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가령 북핵문제 해결에 한국정부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도 (특히 미국, 일본을 염두에 둘 때) 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이 옳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13일 <경향신문>의 보도로 폭로된 사실을 생각해보자. 2003년 10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한국이 이라크 파병을 하는 대가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우크라이나 해법을 말함)을 약속했지만, 미국은 그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해 왔다.

만약 한국정부가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면서, 그것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 되고 불필요한 긴장고조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고 그런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까? 이런 발상은 (그 의도와 별도로) 대단히 무책임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미국의 북한인권특사가 개성공단 북한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절대주의적 잣대로 제기하고 남북경협의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내정간섭에 가까운 언사이고 사실과 거리가 먼 주장이다. 한국이 북한인권 결의안에 찬성할 경우 미국과 일본이 그것을 이용해 북한을 압박하거나 6자회담의 재개 혹은 진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넷째, 북한이 미사일 발사, 핵 실험을 한 마당에 심각한 북한인권 상황에 침묵하는 것은 북한인권 개선은 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도 유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상황이 어려울 때 골치 아픈 문제를 털고 가자는 안이한 발상으로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섯째,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에도 북한인권 결의안은 찬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올해 들어 한국이 유엔 사무총장과 부(副)인권고등판무관을 배출한 마당에 북한인권에 반대하거나 기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내정자의 잇따른 발언이 이같은 주장과 가까운데, 그 발언은 그가 한국 외무장관이었을 때의 발언과 대조된다는 점에서 사견이거나 유엔 사무총장 내정자로서의 견해라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북한인권은 원칙적·현실적 양 측면에서 '평화적 생존권'을 적극 끌어안아야 한다. 북한인권 결의안에 제시되고 있는 각종 권리들이 향유되기 위해서는 전쟁이 없고 먹고 살 식량이 있어야 한다.

평화적 생존권의 관점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핵선제 공격 독트린 모두 지탄받아 마땅하다. 한반도 전쟁 방지와 대북 인도적 지원은 북한인권 개선과 별도의 문제가 아니라 긴밀히 상호연관 되어있다.

바람직한 북한인권 접근원칙

이상의 논의로부터 우리는 북한인권에 대한 타당한 접근원칙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인권의 보편성과 총체성이다. 다만 인권의 보편성은 절대성과 구별되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인권 역시 보편성에 예외가 될 수 없지만, 현실성 있는 인권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가진 역사적 경험과 사회경제적 조건 및 국제적 환경 등을 감안해야 한다.(이를 두고 한 인권전문가는 '상대적 보편주의'라 말한 바 있다.)

이를 무시하고 인권의 보편성을 무조건적으로 주장한다면 그것은 인권을 절대적이고 획일적으로 적용하려는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리고 북한인권을 특정 영역만 선택적으로 부각시키고 다른 영역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도 인권의 불가분성과 상호의존성, 상호연관성에 위배된다.

둘째, 북한인권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실질적으로 향상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동안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북한인권 상황을 폭로하고 북한정부를 호명해 '창피주기식' 접근(naming and shaming strategy)을 했다면, 앞으로는 북한정부가 인권개선에 나설 수 있는 국제정치적 환경을 조성해주고 인권개선 방법을 알려주고 필요한 협력에 나서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 유력한 방안이 북핵 폐기와 함께 북한과 미국·일본의 관계정상화, 북한의 개혁개방 지원, 인도적 지원 등이다.

셋째, 한반도 평화와 조화를 이루며 북한인권에 접근해야 한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인권 보호 및 신장은 전쟁 방지 및 평화 정착 노력과 함께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인권 특별보고관도 지적하고 있듯이, 북한인권 문제도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과 병행돼야 한다.

한국정부의 전략적 판단과 과제

정부는 작년 11월 '제60차 유엔 총회 북한인권 결의안 관련 정부 입장'에서 기권하는 취지를 밝힌 바 있지만, 지금 당시의 판단을 변경할 아무런 정세 변화가 없다.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된 상태다.

물론 북한은 자신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6자회담 복원에 나설 수도 있지만, 한국정부가 뚜렷한 이유 없이 결의안 지지로 선회한다면 그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될 수 있고 북한은 그 책임을 남한에 전가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그간 전개해 온 부분적인 화해협력의 성과가 유실되고 한국과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개선 통로가 막힐 우려가 있다.

작년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 북한인권 개선 외에도 한반도 평화와 안전에 긴요한 더 시급하고 중요한 다른 정책 목표도 갖고 있다"고 말하고, "따라서 북한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우리의 노력도 대북정책의 전반적 틀 속에서 여타 주요 우선순위와 조화를 이루면서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여전히 유효한 입장이다.

북한인권 결의에 관한 입장과 관련해 개인적인 판단과 정부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정부의 대북정책은 인권문제만 중심에 놓고 전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는 주장이나 행동은 시민사회에서 맡아 상호 역할분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한국(시민사회, 정부 모두)의 북한인권 개선 노력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이에 대한 입장 차이로 정치적 갈등을 벌이는 것이 북한인권 개선에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 그러나 정부와 시민사회는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한 종합계획을 마련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그 방안 수립과 협력관계 형성을 위해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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