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조선족 남성의 양심고백 "탈북자 옷 벗기고…"-조선닷컴
  • 관리자
  • 2012-08-02 09: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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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이규호씨 밝혀
"내 전기고문 못견디고 북송된 그 사람… 용서를 빌고 싶어요"

"그때 제 손엔 전기 방망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나에게 고문당한 남성은 비명을 지르며 울면서도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4시간 동안 공안 4명에게 전기고문을 당하고 발로 밟힌 그 남성이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자신은 조선인이라고, 제발 조선(북한)으로 보내지는 말아 달라고…."

1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만난 남성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검은 공안 제복을 입은 이 남성은 10년 전만 해도 경찰번호 106710, '리쿠이하오'(李奎浩)라고 불렸다. 리쿠이하오는 지난 1995년 8월부터 2002년 4월까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선양(瀋陽)시 허핑(和平)분국 시타(西塔)파출소에서 공안원으로 일했던 조선족(한국계 중국인) 이규호(41·사진)씨다. 이씨가 일했던 시타파출소가 관할하는 시타 지역은 '코리아타운'이라고 불릴 정도로 탈북자와 조선족이 많은 곳이다.

이씨는 파출소 공안원으로 일하면서 3명의 중국인과 1명의 탈북자를 전기고문했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불렀다.

1996년 12월 이씨는 한 식당의 직원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받고 조사에 나섰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던 이 남성 직원은 신분증이 없었고, 어떤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때는 마침 선양시 공안국에서 탈북자를 잡아오면 업무 가점을 준다고 했을 때였다. 이씨는 동료 3명과 함께 이 남성을 파출소 안 쪽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중국말을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이 남성은 탈북자가 확실했다.

이씨는 40㎝ 정도의 전기 방망이를 들었다. 남성의 옷을 벗기고 팔과 다리, 배와 얼굴 등 온몸을 전기 방망이로 때렸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기 방망이는 작동시키면 '팍' 하는 소리와 섬광이 났다. 남성의 몸에 전기 방망이를 갖다 대자 남성은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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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img_caption.jpg 중국대사관 앞에서 폭로… 자신을 중국 공안 출신이라고 밝힌 이규호씨가 1일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공안으로 근무할 당시 탈북자를 고문했다”고 양심선언을 하는 도중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이씨 등 공안원 4명이 남성을 둘러싸고 발로 마구 밟았다. 그렇게 4시간 동안 고문받은 남성은 한국말로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저는 조선인입니다. 제발 조선으로만 보내지 말아 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바로 파출소 소장한테 그 남자가 탈북자라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다음날 단둥(丹東) 국경을 거쳐 조선(북한) 정부보위과에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제가 죄인이죠. 그 남자한테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어요." 그는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2010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2002년 4월 공안국에서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은 이씨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해고 이유에 대해 이씨는 자신이 조선족이기 때문이라고만 짐작할 뿐이다.

한국에서 이씨는 공사판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그는 지난 2월 자유선진당 박선영 전 의원이 탈북자들을 위해 단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씨는 "나는 탈북자들을 고문했는데, 탈북자 인권을 위해 단식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어 4월 미 인권 단체 디펜스포럼 수잰 숄티(Scholte) 대표의 연설을 듣고 다시 한 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114일 동안 중국 단둥시 국가안전청에 구금돼 고문을 받은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의 소식을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씨는 "내가 중국에서 한국인(탈북자)을 고문해 봐서 안다.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욕하고 때린다. 국가안전청에서 전기 방망이쯤은 예사다. 잠 안 재우기, 전기고문보다 더 심한 고문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오후 2시 탈북자 5명과 탈북인권운동가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A4 용지 3장 분량의 양심선언서를 낭독했다. 한 탈북 남성이 "탈북자들을 고문하는 중국은 야만 국가이고, 114일 동안 인권운동가를 감금하고 고문한 것은 끔찍한 인권유린이다"라고 말하자, 이씨는 중국대사관 위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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