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유신 선포 직전 美 몰래 北과 비밀접촉

북한이 지난 1972년 남한의 유신체제 수립에 대해 침묵을 지킨 이유는 남북대화의 중단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북한의 유일체제와 남한의 유신체제 수립에 대해 남북한이 서로 묵시적으로 동의했거나 아예 공모를 했다는 기존의 추정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와 미국 우드로우윌슨센터는 16일 유신체제 수립 40주년을 맞아 유신체제 수립을 보는 북한과 미국의 시각과 대응을 공동으로 분석했다.

이를 위해 1972년 평양 주재 구 동독, 루마니아, 불가리아 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외교문서와 미국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합동 분석자료를 조사했다.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유신체제 수립을 비난할 경우 남북대화의 문이 닫히고 '남조선혁명'의 입지와 공간을 잃게 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남한 당국은 유신 선포 직전 북측과 비밀접촉을 갖고 유신을 위한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과 목적을 설명하고 유신 선포에 대한 북측의 양해를 구하고자 했다.

특히 유신 선포로 인해 북한이 대화 중단을 선언하고 나올 것을 우려해 유신을 선포하는 근본 동기가 남북대화 강화를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임을 강조했다.

신종대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주체라는 단어가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북한 측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남북대화의 효율적 운영을 유신체제 수립의 주요 명분으로 삼았던 남한 못지 않게 북한도 대화 중단을 우려해 유신 선포에 민감한 반응이나 비판을 하지 않았다.

신 교수는 "체제 역량이 월등한 우리가 지금 남북대화를 중단하고 있다"면서 "40년 전 북한의 전술적 고려로부터 배울 것은 없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한 당국은 유신 선포에 대한 북한의 양해를 구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 것과는 달리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 교수는 "남한 정부는 북한의 대화 중단 가능성은 있지만, 미국의 경우 불만이 있어도 대한방위공약을 약화하거나 철회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남한은 유신 선포 직전 남북 비밀접촉과 전달한 메시지에 대해 미국 측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비밀에 부쳐 미국은 접촉 내용을 추론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