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민위
- 2023-11-16 06: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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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거주하는 탈북민 A씨(44) 부부는 지난 4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경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했다.
경찰이 내민 압수수색검증영장에는 A씨 부부가 국내 탈북민들의 의뢰로 북한에 있는 그들의 가족에게 돈을 전달한 행위가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히 A씨 부부가 "재북 가족을 볼모로 탈북민을 상대로 송금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거나, 북의 가족에게 돈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반국가단체(북한) 기관원과 공모하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대공 용의점을 시사했다.
경찰은 이달 초 탈북민들로부터 주로 송금을 받은 A씨 아내를 기소 의견(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15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13년간 탈북민을 상대로 가족 송금을 주선해주면서 한 번도 문제 된 적이 없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갑자기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탈북민 B씨(52)도 지난달 경찰로부터 대북 송금 문제로 수사 대상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B씨는 2020∼2021년에 걸쳐 약 6개월간 자신의 위안화 계좌를 이용해 다른 탈북민의 송금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이게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 가족에게만 돈을 보냈는데도 조사를 받았다는 탈북민들도 있다.
호남권에 정착한 탈북민 C씨(42)는 지난 7월에 경찰로부터 '국가안보' 사안으로 조사를 받으러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C씨는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있는 동생들에게 매년 200만원가량을 보내다가 올해 4월에는 동생의 결혼을 계기로 총 500만원을 송금했다.
C씨에 따르면 경찰은 C씨가 '국가안보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계좌'로 '거액'을 송금했다면서 북에 있는 가족한테 보낸 것이 사실인지 추궁했고 C씨가 맞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9월 C씨는 사건이 다른 경찰관서로 인계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C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경찰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내 사건이 종결됐다는 게 아니어서 여전히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복수의 탈북민과 탈북민단체에 따르면 전국 각지에서 탈북민의 대북 송금과 관련해 경찰의 동시다발적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일반적으로 탈북민 대북 송금의 구조는 '탈북민이 국내 브로커 ㉠의 원화계좌로 송금→㉠이 중국 브로커 ㉡의 원화계좌로 송금→㉡이 위안화로 북측 브로커에 전달→북한 내 가족에 전달'의 순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외국환거래은행을 통한 정식 환전과 외환 송금이 아닌, 속칭 '환치기' 방식의 자금 반출이므로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해당한다.
중국 측 브로커가 탈북민의 돈을 북한에 전달한 내용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 정식 외환 송금을 받지 않으므로 합법적 송금이 가능하지 않다는 게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북한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대다수 탈북민으로서는 소수 브로커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A씨는 경찰이 아무런 대공 혐의를 찾아내지 못하자 결국 외국환거래법 위반만으로 송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사 경찰이 '합법 송금을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아니냐'고 하더라"며 "합법적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달라고 했더니 경찰도 말을 못하더라"라고 했다.
정부는 그간 탈북민의 가족 대상 송금은 인도적 차원에서 묵인해 왔다.
정부 관계자는 "만성적 식량난을 겪으며 생계 어려움에 시달리는 재북 가족에게 보내는 돈이고, 규모도 크지 않아 역대 정부가 단속하거나 차단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 사회에서 시장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이례적인 탈북민 대북 송금 수사 배경을 두고 탈북민 사회 일각에서는 내년 시행되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다수 탈북민의 송금을 주선하는 브로커의 활동 이면에는 대공 용의점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 대공 수사권을 넘겨받은 뒤 발표할 '실적'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정의연대 정 베드로 대표는 지난 1일 통일부 포럼에서 경찰의 대공수사권 이관을 동시다발 탈북민 대북송금 수사의 배경으로 거론하면서 "탈북민의 가족 대상 송금은 (외국환거래법 처벌에서) 예외로 하는 등 합리적인 정책을 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 당국이나 기관원들이 탈북민 송금을 새로운 '돈줄'로 보고 브로커와 공모해 송금을 압박하는 정황을 경찰이 포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소장은 "작년부터 북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무리한 송금 요구를 받았다는 탈북민들 얘기가 있다"며 "경찰이 그러한 내용을 인지해 수사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은 연합뉴스의 관련 질의에 북한 내에서 탈북민의 대북 송금과 관련해 특별한 변화는 확인된 바 없다고 답변했다.
국정원은 또 최근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송금 행위 수사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 측은 제보와 첩보에 따라 브로커들 위주로 수사했다며 대공 수사권 이관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B씨 등을 수사한 대구경찰 관계자는 "송금을 부탁한 돈이 가족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빼돌려지는 것 같다는 탈북민 제보가 있어 수사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의뢰대로 돈이 전달된 것으로 파악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만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고 설명했다.
A씨를 수사한 울산경찰 관계자도 "거액을 송금한 브로커들을 첩보에 따라 수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장에 적시된 대공 용의점을 입증하지 못한 것에 관해선 "자세한 수사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합법적으로 송금할 길이 없는 평범한 탈북민 대부분은 브로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고민스러운 부분"이라면서도 "수사 결과 불법행위가 확인됐는데 경찰이 묵살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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