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민위
- 2023-08-21 06: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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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탈북민 유튜버인 나민희(32)씨는 지난 14일 경기 고양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 체제가 언제든 붕괴할 수 있다며 "내일이라도 (평양에 있는) 부모님을 만날 가능성에 준비하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나씨는 "북한이 지금 겨우겨우 버티고 있어 주민들 살기가 어렵다"며 "밖에서 제재를 받고 있지만, 원유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내부에서 특별히 나오는 것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2년 젊은 지도자 김정은 등장에 한때 주민들의 기대가 있었으나 2013년 장성택(김정은 고모부) 처형 후 사회가 공포 분위기로 바뀌어 실망했다고 밝혔다.
나씨는 2021년 4월 같은 평양 출신 탈북민인 김정국(30)씨와 결혼했다. 이후 강연과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억척스레 돈을 모아 지난 6월 임대주택을 벗어나 자기 집을 마련했고 이달에는 카페도 창업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 잘 살아왔다는 것을 부모님께 눈으로 보여드리면 탈북하길 잘했다는 칭찬을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문답.
-- 북한에서는 어디서 살았나.
▲ 1991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양정사업소(곡물을 보관·관리·도정해 공급하는 곳) 공무원이었다. 어머니는 대학 교원이었지만 월급이 무용지물이어서 촌지가 더 많은 중학교 교사로 옮겼다. 특수목적고 격인 평양제1중학교와 요리전문대를 차례로 졸업하고 2011년부터 외화벌이 음식점에서 일했다.
-- 김정은 집권 전후로 차이가 있었나.
▲ 김정은이 젊은 데다 아내나 연설 목소리를 공개하는 등 은둔형이던 김정일과 다른 모습을 보여 변화에 대한 기대를 했다. 2012년 4월 15일 처음 목소리를 공개했을 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이라며 잘살게 해주겠다고 얘기했을 때는 많은 주민이 감동해 울었다. 그런데 이듬해 장성택 처형 이후 간부들을 쏴 죽이고 한국 드라마를 본 주민을 엄벌해 사회가 더 무서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정은 체제에서 단속이 더 심했나.
▲ 김정일 때보다 더 엄해졌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청바지나 찢어진 바지, 짧은 치마 등을 금지했다. 생머리를 풀어헤치거나 긴 머리를 못 하게 했다. 염색, 탈색도 안 된다.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규찰대는 지정 장소에서 유니폼을 입고 단속했지만, 당학교 출신 청년동맹(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지도원들은 일상복을 입고 다니다가 지하철역 등에서 임의로 단속해 거주지와 직장, 학교 등에 단속 기록을 보냈다. 단속되면 소속 단체에서 요주의 인물이 돼 회의 때마다 집중 비판을 당한다. 하나라도 걸릴 게 있는 10대, 20대 여성들은 담배 등 뇌물을 주고 풀려나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자체적인 모임을 갖지 못하도록 방학 때도 학교로 불러 '노작'(최고지도자의 저서) 공부나 학교 보수 작업에 동원했다.
-- 한류 단속도 심화했나.
▲ 한국 드라마나 노래도 시청 못 하게 했다. 친구들과 '가을동화, 겨울연가, 꽃보다 남자' 등 한국 드라마를 몰래 봤다. 잡혀서 이력에 기록이 남으면 인생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한국 드라마가 퍼지고 나서는 예전처럼 남녘 동포가 굶어 죽는다는 얘기는 없어졌다. 대신 남한이 잘살아도 미국 식민지일 뿐이며 북한은 어려워도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나라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 지방에도 가봤나.
▲ 대학 시절 농촌동원 때 황해북도 황주와 황해남도 배천에 가서 한 달 정도 농사일을 했다. 벼농사를 하는 분이 정작 쌀도 없이 어렵게 살고 있었다. 미국의 대북 제재 때문에 못 사는 것이라고들 했다. 지방으로 가는 건 죽는 거라는 생각과 함께 평양에서 태어나 다행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 언제, 무슨 이유로 탈북했나.
▲ 2014년 10월 지인으로부터 해외에 인력을 파견하는 고려심청회사를 소개받아 (지중해 섬) 몰타에 있는 중국인 봉제공장에 일하러 갔다. 이탈리아 명품 의류를 만드는 공장에서 다른 북한 주민 약 40명과 함께 하루 11시간씩 일했다. 당 자금 70% 정도 빼고 400∼500유로(약 58만∼73만원)를 받는다는 얘기와 달리 130유로(약 19만원)만 받았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도 기숙사 동료와 같이 다닐 정도로 통제와 감시 속에서 지냈다. 자유가 눈앞에 보이지만 휴대전화도 소지하지 못하고 인터넷도 이용할 수 없어 답답하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으로 돌아간다면 죽을 때까지 예전처럼 살아갈 것이 너무 끔찍했다. 한 번뿐인데 제대로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 어떻게 한국으로 왔나.
▲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와 각종 단체에서 여권 소지 등을 조사하자 보위원이 여권을 통역 겸 책임자에게 줬다. 통역과 친해진 뒤 2015년 10월 함께 배를 타고 탈출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에 도착했는데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져 수용소에 갔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것 같아 한국대사관으로 갔다.
-- 한국 생활은 어땠나.
▲ 2015년 10월 한국에 입국했다. 하나원 출소 이후 대중교통 이용 등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무서워서 은둔했다. 2020년 동향 출신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유튜버가 되면서 세상으로 나왔다. 임대주택을 벗어나서 집을 사고 카페도 창업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한국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탈북민이 잠재력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할 것으로 본다.
-- 가족과는 연락이 되나.
▲ 연락을 못 하고 있다. 제대로 민주주의가 구현된 나라와 국민의 각종 권리 등에 대한 정보가 북한에 계속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주민들이 들고일어났을 때 세계가 보호해주고 지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자유 왕래가 가능한 두 국가 체제를 원하는 한국 국민이 많은데 김정은이 계속 통치할 수 있어 반대한다. 북한이 중국에 장악당하는 것보다 한국 영토에 제대로 귀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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