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민위
- 2023-08-07 06: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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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메르켈을 키워야 합니다."
탈북민으로서 비정부기구(NGO) '유니블하트'를 이끄는 김광호(47) 대표는 지난 2일 동독에서 자란 뒤 독일 연방 총리를 역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처럼 통일 후 남북한 주민 간 소통과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탈북민 리더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대전 헬몬수양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일성 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던 윗세대와 달리 어린 시절 '고난의 행군'을 겪어 불만이 많은 장마당 세대가 주축이 되면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둘러싼 한국·중국·일본·러시아 출신 청년들을 통해 북한 다음 세대와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일까지 나흘간 대전에서 탈북 청소년 지원 캠프를 주도한 김 대표는 "한국에 와서 국가 정체성 부재와 문화 충격을 겪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심어주고 포용함으로써 통일한국을 이끌 세대로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탈북민 중심 교회 50여개로 구성된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북한에서 4대째 신앙생활을 하는 그루터기 신자들이 존재한다"며 북한 지하교회와 연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유니블하트는 어떤 곳인가.
▲ '하나 될 수 있는 마음'이란 뜻의 비영리 NGO로, 2021년 5월 탈북민 출신 전도사들이 중심이 돼 설립했다. 탈북 청소년 등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을 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청소년 캠프를, 겨울에는 문화 탐방을 하고 있다. '동무, 함께 춤추자!'란 제목의 이번 캠프에는 탈북민과 고려인 자녀 등 청소년 75명과 스태프 등 총 135명이 참가했다. 오는 12월에는 '탈북 청소년 화해의 길을 걷다'란 제목으로 12월에 동독을 방문해 독일의 통일 과정을 듣고 남북한 화해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 탈북 경험을 배경으로 한 연극도 만들었는데.
▲ 연극 '내 아버지'를 극단새벽과 공동 제작해 작년 8월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여름수련회에서 초연했고 지난 1일 캠프에서도 공연했다. 나처럼 아버지가 없는 탈북민이 중국에서 나그네 신세로 지내다가 한국인 선교사를 만나고 새로운 아버지를 찾게 되는 내용이다. 탈북민 2명이 북한말 자문을 한다.
-- 실제 탈북 과정은 어땠나.
▲ 197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배급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1992년 말 어머니, 누나, 조카와 함께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1993년 누나를 제외하고 모두 북송됐다. 김일성 사망 직후인 1994년 8월 누나가 북송됐는데 10년 형을 받았다. 1996년 겨울 재탈북해 중국에서 10년을 기다렸지만 누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 중국 생활은 어땠나.
▲ 나그네가 뭔지를 실감했다. 어머니는 어린 조카를 공부시키려고 한족에게 시집갔지만, 나는 중국 친척들이 하는 호텔과 노래방 등에서 '깡패'처럼 살았다. 국적이 없고 지문 등록도 안 된 헤이런(黑人·어둠의 자식)이어서 사고를 쳐도 찾기 어려웠다. 중국에서 만 10년간 있으면 한국에서 국적을 못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행을 택했는데 거짓 정보였다. 2007년 5월 9시간 동안 눈길을 걸어 몽골로 간 뒤 한국에 입국했다. 어머니와 조카는 2010년 태국을 거쳐 데려왔다.
-- 언제부터 목회자 생활을 했나.
▲ 지인 소개로 중국 옌지(延吉) 지하교회에 가끔 다녔다. 그러다 조선족 여성을 사귀었는데 내가 탈북민인 것을 안 여성의 부모가 임신 8개월에 강제 낙태시켰다. 부모님과 북한 당국뿐 아니라 하나님도 원망스러워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에 와서 2008년께 만난 고 김주 권사(전 두리하나국제학교 원장)와 고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덕분에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2010년 3월 탈북민 여성을 만나 결혼한 뒤 2012년부터 신학을 공부해 전도사가 됐다. 최근 목사 고시를 통과했으며 올가을이나 내년 봄 안수를 받을 예정이다.
-- 앞으로 계획은
▲ 김 권사와 주 교수로부터 받은 만큼 다음 세대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과 중국 조선족, 고려인, 재일본조선인 자녀를 대상으로 이른바 '민족 디아스포라' 사역할 계획이다. 이들은 왼쪽 중국, 오른쪽 일본, 위쪽 러시아, 아래쪽 한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북한의 다음 세대를 복음화할 때 언어가 통하고 가장 익숙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 북한이 변할 수 있다고 보나.
▲ 조그마한 구멍이 나기 시작하면 당국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져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양강도·함경북도 등 중국 국경과 가까운 지역이나 탈북민, 일본 조선인과 연계가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 탈북민 3만여명도 북한 가족들에게 연간 300억원 가까이 보낼 수 있고 음으로, 양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전화통화에서 말 한마디라도 계속 전하면 효과가 눈덩이가 될 것이다. 대북전단과 대북 확성기방송, 극동방송 등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군인 등이 한국과 기독교 정부를 듣거나 보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한국 방송에 맛을 들인 이들은 기술자를 불러 TV나 라디오 주파수 제한을 풀거나 배를 타고 나가서라도 본다. 당국의 통제가 강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듣는 귀와 보는 눈을 언제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생각의 변화는 김정은도 지배할 수 없다.
-- 언제쯤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나.
▲ 10여년 새 북한 정권의 주축이 장마당 세대로 바뀌면 북한 스스로 문을 열던 강제로 문이 열리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배급 세대인 50대까지는 수령과 장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남아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고난의 행군을 겪은 장마당 세대는 원망이 가득 차 있다. 우리 세대까지는 아무리 친한 사이에도 김정일·김정은 이름을 함부로 말 못 했는데 장마당 세대는 쉽게 얘기한다. 중국에 있는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바깥세상을 보기도 하고 유행에도 민감하다.
--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 성공하지 못한 '한반도 운전자' 역할 대신 탈북민 교육을 통해 통일 일꾼을 키워내야 한다. 각 정당에서 탈북민 정치인을 양육할 필요도 있다. 탈북민 자녀들을 동독 출신 메르켈 전 독일 총리 같은 인재로 키워야 한다. (메르켈 전 총리는 태어난 직후 동독으로 이주했다가 독일 통일 후 기독교민주당에서 활동했으며 2005년 첫 여성 총리가 됐다) 탈북민 자녀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심어주고 대안학교의 문턱을 낮추는 등 포용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통일됐을 때 북한을 잘 아는 이들이 소통 과정에서 중간자 역할 할 수 있고 정치에도 도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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