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장쩌민, 김정일에 '개방' 권유…북중관계 원칙 '16자 방침' 천명
  • 북민위
  • 2022-12-01 06: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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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사망한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 주석의 집권기 북중관계는 '선냉후온'으로 요약된다.

1989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르며 최고 권력자에 오른 장쩌민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진두지휘했다. 냉전 종식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남은 공산국가가 된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변신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특히 1992년 8월 한중수교는 북한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북한은 이를 혈맹의 '배신'으로 여겼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묘향산 별장을 방문한 첸지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에게서 한중수교를 추진 중이라는 장쩌민의 메시지를 전해 듣고 "앞으로 자주노선을 걷겠다"며 중국에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한중수교를 계기로 북·중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후 김일성은 1994년 7월 사망할 때까지 중국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결국 중국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북한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했고,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대규모 아사 사태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북핵 문제까지 불거지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5월 중국을 전격 방문해 장쩌민 주석과 회동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장 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 개혁개방의 성공에 대해 평가한다"고 말했다. 한중수교를 포함한 중국의 개혁개방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북한이 어쩔 수 없이 중국의 변신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장 주석은 김정일에게 "개방정책과 공산당 일당통치를 조화시킬 수 있다"며 "경제개방 정책을 추진하라"고 권유했다.'

김정일은 2001년 1월 중국을 다시 방문해 상하이의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자동차 공장 등을 견학하며 중국의 발전상을 실감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얼어붙은 북·중 관계는 해빙기로 접어들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는 중국의 지원으로 기아사태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예속을 가중하는 부작용도 동반했다.

장 주석은 2001년 9월 평양을 답방해 김정일과 만난 자리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를 지향하며. 선린우호관계 속에서, 협력을 강화한다"(繼承傳統 面向未來 睦隣友好 加强合作)는 내용의 '16자 방침'을 천명했다.

그가 천명한 16자 방침은 이후 후진타오와 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언제나 강조하는 원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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