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소식]
탈북 소녀챔프 최현미 글러브 속에 펜을 쥐다
- 관리자
- 2010-05-10 14:14:59
- 조회수 : 4,974
WBA 페더급챔프 최현미 돈 없어 방어전 못치르다
윤승호 교수가 프로모터 성균관대 10학번 합격…
- ▲ 최현미는“2012 런던 올림픽에 여자 복싱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정말 잘 된 일”이라며“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리지 않고 복싱 저변이 넓어져‘언니’라 부르며 날 따르는 후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진한기자 magnum91@chosun.com
지난주 서울 군자동에 있는 동부 은성 체육관에서 예비 대학생 최현미를 만났다. 지난달 21일 쓰바사 덴쿠(일본)에 판정승을 거두고 2차 방어에 성공한 최현미는 3주 전 맹장염 수술을 받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 들을 생각에 벌써 신이 나요. 연애는 몰라도 남자애들과 친하게 지낼 자신은 있어요. 하하."
■한국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최현미는 해외 언론에 이미 한국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주연한 복싱영화의 제목으로, 1센트짜리 상품만 파는 상점에서 100만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물건을 얻었다는 뜻)로 수차례 소개된 '유명 인사'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 BBC, 알자지라 등이 앞다퉈 최현미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탈북 소녀 복서'란 수식어 때문이었다.
평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을 보인 최현미는 13살이던 2003년 김철주 사범대학 복싱 양성반에 들어갔다. 여자복싱이 베이징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것에 대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던 소녀의 운명은 2004년 2월 국제무역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제안한 중국 가족 여행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태국과 캄보디아를 거쳐 아버지가 한국에 들어갔고, 5개월 뒤 최현미가 어머니, 오빠와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한 달도 안 돼 친구들에게 서울말 잘 쓴다고 칭찬들을 정도로 적응은 빨랐어요.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니 자연스레 복싱 글러브가 눈에 들어 오더라고요." 단숨에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했지만, 대회 우승상금이 5만원에 불과한 열악한 현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부모님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최현미는 고교 2학년이던 2007년 프로로 전향했지만, 순진하게 믿고 따랐던 매니저에게 12년의 '노예 계약'을 강요당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세계챔피언에 오른 뒤에도 돈이 없어 방어전을 치르지 못할 형편에 몰렸다.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한국에선 복싱이 할 만한 운동이 아니더라고요."
- ▲ 윤승호 교수
그런 그에게 지난 5월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났다. 윤승호(50)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최현미의 소식을 접한 뒤 프로모터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윤 교수는 "처음 만난 현미가 세파에 찌든 얼굴로 '아저씨는 저 도와주실 거예요?'라고 물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지난 8월 권투협회에 정식으로 프로모터 등록을 마친 뒤 2차 방어전을 손수 준비했다. 도전자와 경기 장소(성균관대 체육관)를 선택했고, 사비를 털어 진행 경비를 마련했다.
아내인 방송인 김미화씨와 함께 MBC 오락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제작진도 만났다. 2차 방어전을 준비하며 3개월간 흘린 최현미의 땀방울은 내년 1월 전파를 탈 예정이다. 윤 교수는 최현미에게 대학 진학의 길도 열어줬다.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최현미지만 인생의 1순위는 복싱이다. "훈련은 죽을 만큼 힘들지만, 복싱의 맛을 알아가는 재미가 대단해요. 1차 목표는 10차 방어예요."
주위에서 복싱 실력보다 탈북자 출신이라는 데 더 관심을 가질 때는 속이 상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선에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제 운명이잖아요. 고향 생각날 땐요, 대동강과 닮은 한강변을 뛰어요."
- ▲ 세계 타이틀 2차 방어에 성공한 탈북복서 세계챔피언 최현미가 22일 서울 군자역 인근의 복싱체육관에 맵시있게 차려입고 나와 앞으로의 대학생활과 복싱에 대해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