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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서 평양까지 6일 걸려… 정전으로 열차 40시간 멈추기도”-동아닷컴
- 관리자
- 2012-09-03 09:03:44
- 조회수 : 2,515
■ 함경북도 주민의 7월11∼25일 천신만고 평양 방문기
7월 11일 오전 10시 열차에 올랐다. 총 12량 가운데 1량뿐인 침대차는 이미 간부들 차지였다. 주민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일반 객차에 밀려들었다. 사람 냄새와 땀 냄새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여행증명서와 표 검사를 하는 승무원이 사람들과 뒤섞여 아수라장이 됐다. 승무원은 과거처럼 위반자들을 집결소로 데려가기보다 무조건 벌금을 물리려 했다. 역마다 증명서와 차표를 검열하는데,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것 같았다.
열차는 더뎠다. 청진을 떠난 기차는 김책역도 못 가 벌판에서 멈췄다. 정전 때문이다. 연료 부족 문제가 심각한 북한은 대부분 기차가 전철이다. 기차는 그렇게 40시간을 서 있었다. 간간이 차 안에 매대(판매대)가 오갔으나 너무 비싸 물이나 음식을 사먹을 엄두를 못 냈다.
김책 범포 용반 등 역마다 연착한 열차는 16일 오후 신성천에 도착하고서도 30분에 한 번씩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평양과 인접한 간리부터는 10분이 멀다하고 검열이 이뤄졌고 사람들이 녹초가 됐을 때쯤 기차는 평양역에 우리를 내려줬다. 온몸에 소금기가 돌아 끈적거리고 감자 외엔 먹은 게 없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평양과 청진을 잇는 ‘평라선’의 총연장은 781km. 꼬박 6일(144시간)이 걸려 평양에 도착했으니 평균 시속 5.4km로 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셈이다.
삼석구역에 있는 친정은 2년 전 왔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평양도 중심구역을 제외하고 전기·물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김정일 사망 후 물가가 치솟아 삶이 팍팍했다. 평양에서조차 가정집 베란다에서 돼지를 키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어렵게 도착한 친정이지만 오래 머물 수 없었다. 22일 귀로에 올랐다. 이번에는 차표 값 7000원이 들었다. 7월 22일 평양을 떠난 기차는 200여 km 떨어진 고원역까지 하루가, 청진까지 만 3일이 걸렸다. 열차에 빈자리가 없어 서서 오다 보니 발이 부어 신발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잃어버릴까봐 벗지도 못하고 꺾어 신고 버텼다. 몇 시간이면 갈 거리가 보름이나 걸렸으니 여행을 한번 하자고 해도 고통스러워 할 수가 없다. 앞으로 언제 또 평양에 다녀올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조숭호 기자
북한 주민들이 평양과 신의주를 오가는 열차 창문 너머로 보따리 짐을 싣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해 9월 중국의 토론방 사이트인 톈야서취(天涯社區)에 올라온 사진. 사진 출처 톈야서취
“청진에서 평양까지 꼬박 5박 6일이 걸렸다. 평양은 물가가 너무 올라 일반 사람들은 물건을 살 형편이 못 되고 부업을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함경북도 청진에 사는 50대의 김미선(가명·여) 씨는 최근 평양 방문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동아일보는 7월 11일부터 25일까지 청진∼평양을 기차로 다녀온 김 씨의 방문기를 중국 소식통을 통해 입수했다. 김 씨는 북-중 보따리 무역을 하는 남편을 두고 있으며 평양에 친정이 있다. 다음은 방문기를 발췌한 내용.
평양행은 여행증명서와 차표 발급 등 첫 단계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인민반(주민통제조직)부터 보안서(경찰서)까지 단계마다 뇌물을 달라고 했다. 북한에선 여행증명서 없이 여행을 할 수 없다. 특히 김일성 사망일(7월 8일) 직후여서 평양 유입인구 통제가 엄격한 탓에 기차표도 ‘아는 사람’이 없으면 구입이 불가능했다. 증명서 발급에만 뇌물 100달러가 들었고 열차표는 국정가격의 10배인 1만 원을 주고서야 구할 수 있었다. 북한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3500원 내외인 것에 비춰 엄청난 바가지였다.
함경북도 청진에 사는 50대의 김미선(가명·여) 씨는 최근 평양 방문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동아일보는 7월 11일부터 25일까지 청진∼평양을 기차로 다녀온 김 씨의 방문기를 중국 소식통을 통해 입수했다. 김 씨는 북-중 보따리 무역을 하는 남편을 두고 있으며 평양에 친정이 있다. 다음은 방문기를 발췌한 내용.
평양행은 여행증명서와 차표 발급 등 첫 단계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인민반(주민통제조직)부터 보안서(경찰서)까지 단계마다 뇌물을 달라고 했다. 북한에선 여행증명서 없이 여행을 할 수 없다. 특히 김일성 사망일(7월 8일) 직후여서 평양 유입인구 통제가 엄격한 탓에 기차표도 ‘아는 사람’이 없으면 구입이 불가능했다. 증명서 발급에만 뇌물 100달러가 들었고 열차표는 국정가격의 10배인 1만 원을 주고서야 구할 수 있었다. 북한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3500원 내외인 것에 비춰 엄청난 바가지였다.
7월 11일 오전 10시 열차에 올랐다. 총 12량 가운데 1량뿐인 침대차는 이미 간부들 차지였다. 주민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일반 객차에 밀려들었다. 사람 냄새와 땀 냄새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여행증명서와 표 검사를 하는 승무원이 사람들과 뒤섞여 아수라장이 됐다. 승무원은 과거처럼 위반자들을 집결소로 데려가기보다 무조건 벌금을 물리려 했다. 역마다 증명서와 차표를 검열하는데,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것 같았다.
열차는 더뎠다. 청진을 떠난 기차는 김책역도 못 가 벌판에서 멈췄다. 정전 때문이다. 연료 부족 문제가 심각한 북한은 대부분 기차가 전철이다. 기차는 그렇게 40시간을 서 있었다. 간간이 차 안에 매대(판매대)가 오갔으나 너무 비싸 물이나 음식을 사먹을 엄두를 못 냈다.
김책 범포 용반 등 역마다 연착한 열차는 16일 오후 신성천에 도착하고서도 30분에 한 번씩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평양과 인접한 간리부터는 10분이 멀다하고 검열이 이뤄졌고 사람들이 녹초가 됐을 때쯤 기차는 평양역에 우리를 내려줬다. 온몸에 소금기가 돌아 끈적거리고 감자 외엔 먹은 게 없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평양과 청진을 잇는 ‘평라선’의 총연장은 781km. 꼬박 6일(144시간)이 걸려 평양에 도착했으니 평균 시속 5.4km로 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셈이다.
삼석구역에 있는 친정은 2년 전 왔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평양도 중심구역을 제외하고 전기·물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김정일 사망 후 물가가 치솟아 삶이 팍팍했다. 평양에서조차 가정집 베란다에서 돼지를 키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어렵게 도착한 친정이지만 오래 머물 수 없었다. 22일 귀로에 올랐다. 이번에는 차표 값 7000원이 들었다. 7월 22일 평양을 떠난 기차는 200여 km 떨어진 고원역까지 하루가, 청진까지 만 3일이 걸렸다. 열차에 빈자리가 없어 서서 오다 보니 발이 부어 신발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잃어버릴까봐 벗지도 못하고 꺾어 신고 버텼다. 몇 시간이면 갈 거리가 보름이나 걸렸으니 여행을 한번 하자고 해도 고통스러워 할 수가 없다. 앞으로 언제 또 평양에 다녀올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조숭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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