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소식] [부고]원로 정치학자 겸 언론인 양호민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 관리자
  • 2010-05-10 15: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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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공산주의와 타협 안한 현대사 기록자

원로 정치학자이자 언론인인 양호민(梁好民·91) 전 한림대 석좌교수가 17일 오전 8시 50분 지병으로 타계했다.

평양 출신인 양 교수는 일본 중앙대 법학과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뒤, 대구대와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냈다. 1965년 9월 한일협정 비준 반대 성명을 발표한 대학교수단에 참여하면서 '정치교수'로 몰려 대학에서 쫓겨났다. 그는 40대 중반에 강단에서 물러나게 된 소회를 자신이 1961~1964년 주간을 겸직했던 잡지인 '사상계' 1965년 11월호에 이렇게 썼다. '민족적 중대 문제에 처하여 권력에 영합하거나 곡학아세함이 없이 자기 견해를 당당히 표현하고 대학에서 밀려난 것을 조금도 수치스럽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을 떠난 양호민 교수는 1965년 말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입사해 1984년까지 재직하며 해박한 사회과학 지식을 토대로 한국현대사의 격동기를 기록했다. 북한 전문가였던 그는 1972년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았고, 북한학회 회장도 지냈다. 사회민주주의자로서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진보적 지식인이었지만, 공산주의와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인 1965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비판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산주의 이론이란 게 사이비 과학으로 위장된 하나의 신화임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과학적, 철학적 공허를 세상에 알려주는 게 사회주의자의 임무"라고 썼다. 그는 1989년 잡지 '한국논단' 창간에 참여해 초대 사장을 맡았고, 1990년 학계로 돌아가 2007년까지 한림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고인의 평생 지기였던 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는 그를 '천성이 공부하고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독실한 학구인(學究人)'으로 꼽았다. 양 교수는 만년에 한국 근현대사를 의욕적으로 정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쳤다. 85세이던 2004년에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해방 8년간의 현대사를 정리한 '38선에서 휴전선으로'를 냈다. 구순(九旬)을 넘긴 작년 7월에는 1400쪽이 넘는 대작 '한반도 격동 1세기반-권력, 이데올로기, 민족, 국제관계의 교차'를 탈고했다. 북한 공산주의를 주로 다룬 이 책 서문에서 그는 '만성적 척추협착증, 왼쪽 눈 시력 저하, 몇 차례의 입원 등 악전고투 끝에 연구 계획을 끝내고 나니 심신의 해방감을 만끽하게 된다'고 썼다. '남편의 연구생활에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아내의 영전에 바친다'는 헌사를 담은 이 책은 양 교수의 유작이 됐고, 다음달 한림대 출판부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저서로는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정치' '현대공산주의의 궤적' '격랑에 휩쓸려간 나날들' '한국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시련' 등이 있다. 유족은 양운철(54)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등 1남3녀와 사위 김태웅 (주)협진T&C 이사, 박의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교수, 최인철 서울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8시. (02)3010-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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