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17년차 탈북민 요양보호사 "고난의 행군, 가슴에 비수처럼 남아"
  • 북민위
  • 2022-08-02 07: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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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땅의 쓰나미' 출간 "통일이 올까…그날 위해 마음도 몸도 튼튼히 다져"

첫 에세이 낸 17년 차 탈북민 요양보호사 장혜련씨
첫 에세이 낸 17년 차 탈북민 요양보호사 장혜련씨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고난의 행군'을 되풀이한다는 건 참극이 아닐 수 없어요. 그때 겪은 고통은 25년이 지나도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있어요. 북한 사람들이 몰살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서웠어요."

17년 차 탈북민 장혜련(63)씨는 지난해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 최말단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세포비서 대회에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말한 뉴스를 접했을 때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첫 책 '북한 땅의 쓰나미'(바른북스) 출간을 맞아 최근 전화로 만난 장씨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북한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고난의 행군'이란 말을 들으면 '죽음'과 '비극'이란 단어만 떠오른다"고 말했다.

일곱 남매 중 막내인 장씨는 1990년대 후반 식량난으로 통계상 30만 명 또는 3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다고 알려진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 다섯 형제를 잃었다. 남편과 딸 역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혈육이라곤 이제 탈북에 성공한 둘째 언니와 아들뿐이다.

북한에서 장사로 근근이 끼니를 잇던 장씨는 두만강을 건너고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태국을 거쳐 2006년 8월 대한민국에 입국해 탈북민 지위를 얻었다. 간병인으로 일을 시작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뒤 15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2010년엔 국민건강보험공단 표창도 받았다.

장씨는 "친구나 지인들이 종종 '북한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는 게 사실인가', '아사(餓死)가 지금도 진짜 있나'라고 물을 때마다 한국 사람들이 북한의 실상을 너무 모른다고 느꼈다"며 "북한을 알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고난의 행군 때를 '갑자기 들이닥친 쓰나미'로 표현했다. 지진해일로 인한 자연재해인 쓰나미가 아니라 독재정치 여파에 따른 고난과 시련을 말한 것이다. 이때를 회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악으로 버티고 사는 인생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하루하루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기아에 시달렸고 거리 곳곳에는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며 "한 줌의 쌀이 없어 사람들이 굶어서 (죽어) 나갔고 마을마다 집들은 빈집으로, 폐가로 돼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남편은 시내에서 제일 큰 공장의 말단 간부였지만 별도의 식량 배급이나 월급 지급은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던 주부 장씨는 그릇과 옷가지를 팔아 먹을거리와 맞바꾸고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는 등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모계사회가 되돌아온 것 같은 시대적 풍조였다"고 했다.

생존을 위해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질을 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남이 죽든 말든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인정과 사랑, 도리 등의 덕목은 사라졌다. 머릿속엔 오직 생존 의욕만이 지배하는 상황이었다. 장씨는 "서로 뜯어먹고 뜯기는 세상"이라고 당시 북한 땅의 모습을 떠올렸다.

우여곡절 끝에 두부 장사와 술장사, 음식 장사를 하며 살던 장씨는 먼저 탈북한 둘째 언니의 도움으로 북한에서 나왔다. 중국 공안에 잡힐 뻔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베트남과 미얀마의 산속을 행군하며, 7시간에 걸쳐 메콩강을 건넌 끝에 태국 난민 수용소에 도착했다. 태국에서 넉 달 반 조사를 마치고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북한에서의 인생살이는 정말로 지옥 같았다.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다 광명을 찾은 듯 한국 땅은 참으로 천국이었다"면서도 "행복에 취할수록 지나버린 아픈 마음의 상처는 뼛속 깊이 허비며 파고든다"고 말했다.

장씨가 하나원에서 받은 간병인 교육은 직업 선택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어르신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차츰 어르신과 보호자에게 마음을 열며 일에서 보람을 찾았다. 그는 "보호자들의 따뜻한 위로와 감사의 말 한마디에 힘듦과 피곤이 녹아내렸다"고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어르신들 돌봄을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책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쓰나미에 떠밀려 여지없이 찢어지고 조각나고 산산이 부서진 (탈북민) 3만여 명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꿋꿋이 자라 통일 조국의 미래를 꿈꾸며 자랑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통일은 언제 오긴 오는 걸까. 통일 조국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히 설 수 있게 마음도 몸도 튼튼히 다져가고 있다."

북한 땅의 쓰나미
북한 땅의 쓰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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