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권력승계] 3대혁명소조 운동과 권력승계 연관성
  • 관리자
  • 2010-05-21 10:28:31
  • 조회수 : 2,185
3대혁명소조운동은 이전의 인텔리 동원운동과는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이전의 지도사업이 사상검열이나 경제지도 어느 한 쪽에 치중되어 행해졌던 반면에 3대혁명소조운동은 정치사상과 과학기술적 지도를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소조원으로 당, 국가, 경제기관, 근로단체 간부들을 포함시킨 것은 김일성의 교시와 그 구현인 당정책을 지표로 하고 전당적, 전국가적 차원에서 3대혁명에 대한 정치적 지도를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선진과학기술을 보유한 청년인테리들을 포함시킨 것은 “대중에게 선진과학기술을 가르쳐주며 새로운 기술혁신을 끊임없이 벌려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둘째, 대규모의 인원이 현장에 장기적으로 파견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실시된 인테리동원 중 최다수였던 것은 1958년-1960년까지 실시된 중앙당 집중지도사업의 7000여 명이 고작이었고, 그 기간도 만 2년으로 종결되었다.

이는 대규모의 소조원들이 생산현장에 장기간 머무르며 지도하고 문제점들을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경제성장과, 정치, 사회적 안정을 확보하려고 한 것으로 보여진다.

셋째, 지도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소조운동은 기존의 당조직, 행정·경제·사회조직과는 별도로 파견된 만큼 소조원들이 중간절차를 거치지 않고 당의 정책과 김일성의 요구를 직접 받아 모든 단위의 직장과 작업반, 생산자들에게 제때에 알려주어 대책을 강구하고 문제점들이나 결함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대중을 적기에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운동 자체의 목적이 검열과 지도의 역할수행 구조를 말한다.

<기능적 특징>

3대혁명소조운동의 특징으로 근로인민대중들에게 정치사회화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3대혁명소조운동이 약 2년동안 비공개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이 기간에 김정일의 정치적 기반구축을 위한 체제개편작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는 김정일의 지도하에 3대혁명소조원들이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간부들을 미리 제거하고 교체시키는 과정에서 소조원들과 간부들과의 마찰이 야기된 증거라고 하겠다.

또한 이 운동은 당위성과 이론적 전개 및 실제 성과를 김정일의 지도력과 결부시켜 후계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근로자>1976년 4월호에는 “영광스러운 당중앙은 오늘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비약하는 우리 혁명과 건설의 현실적 요구에 맞게 3대혁명소조운동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를 밝혀 주었으며”라고 하였으며, 그 성과에 대해 “3대혁명소조운동의 거세 한 물길 속에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 더욱 세차게 나래치고 새로운 천리마속도(70일 전투속도)가 창조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거창한 사회주의건설투쟁도 승리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라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업적과 3대혁명소조운동과의 관계를 선전함으로써 후계구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북한의 구조적 변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의 역할을 하였다.

즉 낡은 세대와의 교체를 위한 간부 육성의 기능, 사회적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고조하는 선동대의 역할도 수행하였던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