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수용소의 노래" 제4화
  • 관리자
  • 2010-07-16 10: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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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남북은 5천의 역사를 함께 살아온 한민족이다. 어쩌다 짐승만도 못한 독재자를 만나서 세계 제일 빈곤국가로 전락한 동토의 땅을, 인간이 살수 없는 지옥의 땅을 우리들이 구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구하겠는가?

라디오 방송극 “ 수용소의 노래 ”

원작 강철환, 각색 김기혁, 감독 송동렬, 오늘은 그 네번째 시간입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다룬 뮤지컬 "요덕스토리의 한장면"
설화: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잡은 개구리를 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속도 상하고 설움이 북받쳐 울어 버렸다. 우리 할머니 생각을 하니 너무나 불쌍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울자 그 아이는 어이가 없었던지 그만 나를 내버려두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나는 집에 와서 불에 개구리를 구웠다. 개구리 고기가 익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목에서는 연신 꿀꺽꿀꺽 침이 넘어갔다. 나는 구워진 개구리를 누워계시는 할머니에게 가져갔다.

“할머니 개구리를 구웠어요, 어서 잡숴 보세요”

내가 내민 개구리 고기를 물Rm러미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맥없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할머니: “너나 먹으렴, 난 괜찮다.”

철환: “안돼요,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우린 어떻게 해요, 할머니 마저 없으면 [울먹이면서]”

설화: 할머니는 울먹이는 나를 바라보시면서 또다시 자신을 자책하셨다.

“내가 생각을 잘못해서 너희들을 이 지옥 같은 곳에 오게 했구나 모든게 내죄로다.”

할머니는 우리들의 불행이 마치 자신의 잘못에 있는 듯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뼈만 남은 할머니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드리며 개구리고기를 할머니 입에 넣어드렸다.

나는 그때부터 할머니를 살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했다. 지렁이를 잡아서 그것을 깨끗한 물에 잘 씻어서 양지쪽 바위 돌에 놓고 말렸다가 할머니에게 드렸고 물고기도 잡아서 드렸다. 할머니를 위해서 삼촌도 , 아버지도 팔을 걷고 나섰다.

어느 날 삼촌은 수용소에서는 좀처럼 구할 수 없는 염소젖을 구해 왔다. 삼촌은 수용소에 있는 염소 방목지에 가서 염소관리원에게 사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염소관리원이 삼촌에게 염소젖을 줄리 만무했다. 삼촌은 염소젖을 얻으려 며칠 동안 그곳에 가서 사정했다고 한다.

그래도 염소관리원은 삼촌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다. 삼촌은 자신이 아끼던 작업장갑을 가져다주면서 염소관리원에게 울면서 사정했다고 한다. 삼촌의 정성이 드디어 염소관리원의 마음을 움직였던지 그는 조그마한 병에 반병쯤 되는 염소젖을 짜주었다.

삼촌은 얻어온 염소젖을 끓여서 할머니에게 대접했다. 삼촌으로부터 염소젖을 구하게 된 사연을 다 듣고 나신 할머니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할머니 : “그러다 보위원 들에게 들키면 어떠칼라고 그러니 차라리 안 먹는게 낮지. 난 괜찮다.”

삼촌 : “ 오마니, 여기서 무슨 일이 더 생기 갔시요.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오마니만 살릴 수 있다면 염소젖이 아니라 염소라도 잡아올 수 있시오. 걱정하지 마시고 빨리 몸을 추슬러야 해요.”

설화: 다행이도 할머니는 염소젖을 몇 술 뜨시더니 조금 정신을 차리시는 것 같았다. 삼촌은 그 후에도 며칠 동안 계속해서 염소젖을 얻어왔다. 드디어 할머니의 병세가 조금 씩 호전되어 갔다. 온 식구가 할머니를 위해 애를 쓴 덕분이었다. 우리할머니의 뻴라그라(펠라그라) 병이 나았다는 소문이 온수용소 안에 퍼졌다.

그러자 뻴라그라 병에 걸려 오늘 내일 죽을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치료 했는지를 물으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우리 집을 다녀갔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우리 옆집에 살던 교토 본부장네 집에서 난데없는 통곡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수용자1: “철환이 아바지 있소 철환이 아바지”

아버지: “ 무슨 일이오”

수용자1: “ 고명옥 할머니 가 끝내 세상을 떠났시오. 가서 방경이라도 서야 할 것 같애요”

설화: 고명옥 할머니는 교토본부장을 지낸 윤덕우라는 사람의 안해이다. 윤덕우는 우리할머니와는 일본에서부터 친분이 있어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안해 고명옥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가 앓을 때는 병문안도 자주 왔었다. 그러던 사람이 우리 할머니가 나아갈 무렵에 펠라그라에 걸리더니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죽고만 것이다.

고명옥 할머니의 죽음소식을 전해들은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왜죽나 그래 나 같은 늙은이도 죽지 않고 사는데” 라고 말씀하시면 하염없이 우셨다. 수용소에 들어 온 이후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하도 우셔서 눈가는 늘 짓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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