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가족관계] 김일성 우상화
- 관리자
- 2010-05-21 11:42:55
- 조회수 : 3,239
김일성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그에 반대하는 주요 세력들을 제거(8월종파사건)하고 1인독재체제의 기반을 구축한 1958년 이후부터로 볼 수 있다. 김일성 개인숭배운동은 과장된 찬양과 상징조작, 과거행적의 비화와 선전, 사상교육 등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김 주석을 호칭할 때에는 그 이름 앞에 최상의 수식어, 최상의 경어가 붙는다. 예컨대, '어버이 수령'에서 '김일성 그이는 한울님'에 이르기까지 그를 호칭하는 수식어는 매우 다양하다. 1960년대 그에 대한 우상화 초기에는 그의 이름 앞에 붙는 경칭과 찬양의 수사가 무려 180여자에 달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의 이름에 새로운 수식어나 경어를 붙여가며 인간의 위치에서 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
우리 민족의 근대사, 항일독립운동사는 김 주석의 날조된 혁명투쟁사로, 그 일가의 족벌사로 개작되었다. 북한의 신문, 잡지와 각급 학교 교과서, 학술서적 등 모든 출판물들은 반드시 김일성 교시로부터 시작하여 내용이 서술되며, 출판물의 대부분은 김 주석의 과장된 행적들을 수록한 개인숭배를 위한 선전책자에 불과하다. 북한의 헌법, 노동법, 토지법, 교육테제 등 모든 법령 등은 김 주석의 저작물로 되어 있다.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는 항일혁명투사, 조선의 해방자로서 김 주석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를 위해서 '항일 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라는 빨치산 동료들의 회고록을 발간하였는데, 이 책은 북한 주민들에게 정치학습의 기본교재로서 성전처럼 되어 있다.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박성철, 김동규, 최현, 임춘추 등 항일 빨치산 투쟁을 전개했다는 94명이 각각 집필한 것을 한데 모았다는 책자. 총 12권(3222쪽)으로 되어 있으며 1959년 5월 '조선로동당 력사연구소'에서 발간하였다.
이 회상기에는 김일성이 '축지법을 쓰는 전설적 영웅'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책자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는 김일성 빨치산부대가 15년간 10만여 회의 전투를 통해 한번도 패배한 일이 없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이 하루 평균 20여 회의 전투를 한 셈이 된다. 또한 북한의 선전물들은 어느 어부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는데 이 책을 읽었더니 삽시간에 파도가 조용해졌다는 기적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일성은 맑스, 레닌을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천재적 이론가로 칭송된다. 모든 주민들이 먹고 입고 쓰고 일하는 것이 모두 '수령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토록 강요하고 있다.
각 가정의 안방에는 반드시 그의 사진을 걸고 신주 모시듯 해야 하고 전국 각지에는 3만5000개가 넘는 동상과 석고상을 세워놓고 전 주민이 참배토록 하고 있다.
김일성 개인숭배운동은 그의 가계와 혈통에 대한 우상화로 확대되어 직계 선조, 외가친척, 전처의 행적을 과장 날조하여 역사책에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활동하였다는 장소는 혁명유적지·사적지로 지정되고 있으며, 그리고 혁명열사릉에다 그들의 무덤까지 꾸며놓은 실정이다.
북한은 1992년 4월 13일 김 주석에게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최고의 대원수칭호를 수여함으로써 그에 대한 우상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김일성 우상화작업은 그가 사망한 후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지속되었다. 김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당중앙위원회·당중앙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정무원 명의로 '금수산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칭(1995.6.12)하였다.)에 안치하고 주민들로 하여금 참배토록 하고 있는 등 김일성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대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사로청 결성 50주년 즈음 호소문(1995.10.27). 이 호소문은 김 국방위원장을 '오늘의 위대한 수령'으로 묘사하고 있다)이라고 부르면서 그 이미지를 화석화시키는 작업을 벌였다.
최근 북한은 김일성 영생론을 주장하고 영원한 수령으로 부르면서 김 주석의 이미지를 화석화시키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1998년 9월 5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는 김 주석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로 추켜세우면서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고 사회주의 헌법을 김일성헌법으로 명명하였다.
김 주석을 호칭할 때에는 그 이름 앞에 최상의 수식어, 최상의 경어가 붙는다. 예컨대, '어버이 수령'에서 '김일성 그이는 한울님'에 이르기까지 그를 호칭하는 수식어는 매우 다양하다. 1960년대 그에 대한 우상화 초기에는 그의 이름 앞에 붙는 경칭과 찬양의 수사가 무려 180여자에 달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의 이름에 새로운 수식어나 경어를 붙여가며 인간의 위치에서 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
우리 민족의 근대사, 항일독립운동사는 김 주석의 날조된 혁명투쟁사로, 그 일가의 족벌사로 개작되었다. 북한의 신문, 잡지와 각급 학교 교과서, 학술서적 등 모든 출판물들은 반드시 김일성 교시로부터 시작하여 내용이 서술되며, 출판물의 대부분은 김 주석의 과장된 행적들을 수록한 개인숭배를 위한 선전책자에 불과하다. 북한의 헌법, 노동법, 토지법, 교육테제 등 모든 법령 등은 김 주석의 저작물로 되어 있다.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는 항일혁명투사, 조선의 해방자로서 김 주석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를 위해서 '항일 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라는 빨치산 동료들의 회고록을 발간하였는데, 이 책은 북한 주민들에게 정치학습의 기본교재로서 성전처럼 되어 있다.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박성철, 김동규, 최현, 임춘추 등 항일 빨치산 투쟁을 전개했다는 94명이 각각 집필한 것을 한데 모았다는 책자. 총 12권(3222쪽)으로 되어 있으며 1959년 5월 '조선로동당 력사연구소'에서 발간하였다.
이 회상기에는 김일성이 '축지법을 쓰는 전설적 영웅'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책자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는 김일성 빨치산부대가 15년간 10만여 회의 전투를 통해 한번도 패배한 일이 없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이 하루 평균 20여 회의 전투를 한 셈이 된다. 또한 북한의 선전물들은 어느 어부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는데 이 책을 읽었더니 삽시간에 파도가 조용해졌다는 기적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일성은 맑스, 레닌을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천재적 이론가로 칭송된다. 모든 주민들이 먹고 입고 쓰고 일하는 것이 모두 '수령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토록 강요하고 있다.
각 가정의 안방에는 반드시 그의 사진을 걸고 신주 모시듯 해야 하고 전국 각지에는 3만5000개가 넘는 동상과 석고상을 세워놓고 전 주민이 참배토록 하고 있다.
김일성 개인숭배운동은 그의 가계와 혈통에 대한 우상화로 확대되어 직계 선조, 외가친척, 전처의 행적을 과장 날조하여 역사책에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활동하였다는 장소는 혁명유적지·사적지로 지정되고 있으며, 그리고 혁명열사릉에다 그들의 무덤까지 꾸며놓은 실정이다.
북한은 1992년 4월 13일 김 주석에게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최고의 대원수칭호를 수여함으로써 그에 대한 우상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김일성 우상화작업은 그가 사망한 후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지속되었다. 김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당중앙위원회·당중앙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정무원 명의로 '금수산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칭(1995.6.12)하였다.)에 안치하고 주민들로 하여금 참배토록 하고 있는 등 김일성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대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사로청 결성 50주년 즈음 호소문(1995.10.27). 이 호소문은 김 국방위원장을 '오늘의 위대한 수령'으로 묘사하고 있다)이라고 부르면서 그 이미지를 화석화시키는 작업을 벌였다.
최근 북한은 김일성 영생론을 주장하고 영원한 수령으로 부르면서 김 주석의 이미지를 화석화시키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1998년 9월 5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는 김 주석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로 추켜세우면서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고 사회주의 헌법을 김일성헌법으로 명명하였다.
<북한전략센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