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가난·따돌림 … 차라리 중국이 더 좋았어요”
  • 관리자
  • 2009-12-30 16: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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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마이너리티 2세’ 그들의 외침 [5] 탈북 여중생 지은이의 생활 [중앙일보]

“가난·따돌림 … 차라리 중국이 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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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찾은 한국은 천국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가난했고, 친구들은 자신을 따돌렸다. 지은이가 사는 임대 아파트 앞 놀이터에 지은이의 그림자가 쓸쓸하게 드리웠다. 왼쪽 사진은 지은이(왼쪽)가 단짝 탈북자 친구와 손가락을 거는 모습. 둘은 “학교 졸업하면 중국 가서 살자”고 약속했다. [김태성 기자]
배가 고파 비틀어진 옥수수대를 씹었다. 배추 뿌리를 훔쳐 먹다 맞은 적도 있다.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넜다. 늪에 빠져가며 베트남에 닿았다. 2004년 탈북 4년 만에 밟은 한국 땅. 천국의 삶이 시작될 줄 알았다. 하지만 소녀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언니도 탈북자가 자꾸 오는 게 싫으세요?” 23일 저녁 서울 한 임대 아파트 놀이터에 지은(15·가명)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두 번의 모험

지은이의 고향은 함경북도 온성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는 기억에 없다. 지은이가 떠올린 북한의 기억은 옥수수 겨, 배추 뿌리, 나무껍질 같은 거다. 2000년 6월 두만강변. “굶어 죽든 잡혀서 죽든 마찬가지”라고, 엄마는 꼬챙이 같은 여섯 살 아이를 안고 혼잣말을 했다.

중국 선양(瀋陽)에서 엄마는 중풍 노인을 간병하며 돈을 벌었다. 지은이는 계란을 실컷 먹으며 학교를 다녔다. 공안만 보면 사색이 되어 도망치곤 했지만 지은이는 공부를 곧잘 했다. 중국 아이들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국어를 했다.

하지만 모녀는 3년 뒤 또 한번 모험을 택했다.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가자”는 것이었다. 공안을 피해 숨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걸어서 베트남 국경을 넘었고, 열 달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모녀는 “이제 다 끝났다”고 한숨을 쉬었다.

#따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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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아이들이 더 잔인하다. “거지야, 왜 왔냐? 배고파서 왔냐?” “너네 나라 돌아가! 너네 줄 거 없어!” 처음 편입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지은이는 따돌림을 배웠다. 필사적으로 남한 억양을 익혔다. 사투리가 나올 것 같으면 아예 입을 닫았다. 하지만 섞일 수 없었다. 숨기려 해도 학년이 바뀌고 몇 개월이 지나면 반 아이들은 어느새 알고 있었다. “쟤 탈북자라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따돌림은 교묘해졌다. 대놓고 욕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대신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쟤 약간 북한 스타일이야.” 혼자 점심 먹기가 싫어서 한동안 점심을 굶었다. “솔직히 왜 왔을까, 너무 후회가 됐어요. 자살도 생각했었고요.”

따돌림이 조금씩 익숙해진 것은 중2가 된 올해부터다. 같은 반엔 북한 출신 친구가 두 명 더 있다. 이 아이들과 고민을 털어놓으며 외로움을 떨쳐냈다. 그렇다고 한국이 좋아진 건 아니다. 두 친구들과 지은이는 약속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중국 가서 살기로. “한국은 차별이 너무 심해요. 차라리 중국이 좋아요. 한국에선 가난하다고, 촌스럽다고 사람을 무시해요. 우리 반 은경(가명)이는 탈북자도 아닌데 가난하다고 따돌림을 당하는 걸요.”

#전단지

지난달 지은이는 전단지를 돌렸다. 아파트 계단을 세 시간 동안 오르내려 1000장을 돌리고 5000원을 받았다. “학원을 다니고 싶어서요. 종합 단과 학원이 한 달에 20만원이나 해요.” 그나마 중학생이란 이유로 더 이상 아르바이트 기회가 오지 않았다.

지은이는 중국어를 빼면 전 과목이 꼴찌에 가깝다. 한국에 와서야 한글을 배웠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는 더 어려워졌다. “공부를 잘해야 중국에 가서 통역사가 될 텐데….”

엄마는 2년 전 역시 탈북자인 새아빠를 만나 재혼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수입이 거의 없다. 정부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산다. 새아빠는 탈북하다 다친 허리 때문에 막노동이 버겁다. “탈북자는 못 믿는다”는 회사들 때문에 몸 덜 쓰는 일자리는 못 구했다. “새터민 친구들은 사정이 비슷비슷해요. 부모님이 막노동 하시거나 정부 지원으로 살거나…. 절대 학원은 보내줄 수 없는 형편이죠. 저도 따돌림을 당하니, 부모님들도 그러실 것 같아요.”

한 해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은 증가하고 있다. 고향 사람들이 늘지만 지은이는 반갑지가 않다. “한국 사람들이 탈북자를 싫어하잖아요. 더 이상 안 와야 우리가 구박을 덜 받을 거 같아요.”

임미진 기자

새터민 절반 실업 … 남한사람 편견이 가장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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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까지 한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모두 1만6729명. 2001년 처음으로 입국자 수가 1000명을 넘은 뒤로 최근엔 한 해 입국자가 3000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립 기반을 못 갖췄다. 지난해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탈북자 3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산가능인구 중 취직을 한 사람은 45%(162명)에 불과했다. 이들도 대부분 단순노무직(35.2%)이나 기계조립(19.8%) 등 불안정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탈주민들이 혼자 힘으로 서려면, 경제적 지원보다 탈북자를 보는 시선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양7종합사회복지관 김성모 총무부장은 “북한과 남한은 문화가 너무 달라 탈북자들이 바로 적응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며 “한국 사람들이 적응하기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성급하게 탈북자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가져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탈북자도 스스로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2002년 입국한 탈북자 김영희(44·산업은행 수석연구원)씨는 “탈북자들은 자기 생각을 굽혀가며 사회생활을 하는 데 서툴다”며 “유연하게 한국 문화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정착지원과 조재섭 사무관은 “내년 30곳에 지역적응센터를 설치해 탈북자들이 서로 경험을 나누고 한국에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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