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수용소의 노래" 제25화
- 관리자
- 2010-07-16 10:51:24
- 조회수 : 1,679
설화: 남북은 5천의 역사를 함께 살아온 한민족 이다. 어쩌다 짐승만도 못한 독재자를 만나서 세계 제일 빈곤국가로 전락한 동토의 땅을, 인간이 살수 없는 지옥의 땅을 우리들이 구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구하겠는가?
라디오 방송극 “ 수용소의 노래 ” 원작 강철환, 각색 김기혁, 감독 송동렬, 오늘은 스물다섯 번 째 시간입니다.
설화: 우리가 한참열을 올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누군가각 오는 기척이 있었다. 올라온 사람은 멧돼지 교원이었다. 그는 설날에 근무를 서게 되어서 오늘밤에 집에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그 분풀이라도 하려는지 한참을 무슨 개소리 하더니 설날 교원실에서 쓸 땔나무를 교원실 화구에 갖다 놓고 집에 가라고 하였다. 말하는 그의 입에선 술 냄새가 확 풍겼다.
나와 정철이가 나무를 한짐 지고 교원실 쪽으로 내려가니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나는 화구에 불을 때면서 창문너머로 교원실을 흘깃 들여다 보았다.
최성근 교원을 비롯한 몇몇 교원들이 둘러앉아서 고기를 구우면서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를 그러지 않아도 굶주린 창자는 뒤집어 지는 것 만 같았다. 마치 저기 않아서 술 퍼먹는 교원들은 상전들이고 우리는 거지 상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억울하고 너무나 내처지가 한심해서 집에 가는 동안 내내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았다. 눈물을 하도 닦아서 옷소매가 얼어붙어 뻗뻗했다.
눈은 계속내리고 있었다. 너무 많은 눈이 내려 주위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울적한 내 마음과 함께 내리는 눈 속에 그대로 파 뭍혀으면 하는 생각이 어린마음에도 굴뚝같이 일었다. 집에 들어서니 집안이 하도 썰렁해서 도무지 내일이 설날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무도 없어서 불도 제대로 때질 못하니 방 안에는 하얀 고드름이 땡땡 얼어 있었다.
1980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벌써 3년째, 새해 첫 아침을 우리는 한숨으로 맞이하였다. 할머니는 그래도 설날 특별공급이라고 받은 한끼분의 입쌀로 설날 상차림을 해놓으셨다.
아침을 먹고 조금 있으려니 이웃의 북송교포 할머니와 아주머니 몇 분이 인사를 왔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었다. “말씀들 나누시라요” 그분들이 오자 아버지와 삼촌은 나무를 하러 간다며 자리를 비켜 들렸다. 나는 밖에 나가는것이 귀찮고 추워서 방 한구석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 있었다.
할머니와 이웃 아주머니들은 처음엔 조용조용 평범한 말만 주고 받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가 커졌다. 듣자하니 모두가 한이 맺힌 불평 불만이었다.
대부분이 남조선 출신인 그 할머니들은 남한 사투리로 말을 하였다. 또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 말도 많이 섞여 있었다. “ 우린 완전히 속았더 속아 뿌렀다고 이런 멍청이들이 어디 또 있겄어 그동안 뼈 빠지게 번 돈 다 조총련에 갖다 바치고 이제는 예까지 와서 이 고생이라니” 우리 할머니와 고향이 같은 제주도 출신 할머니는 말할 때마다 방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할머니 1: 그거야 어디 가스짱 뿐이갔소 나도 그렇고 우리모두가 속아서 온것이지 세상에 그렇게 감쪽같이 속을수가 ..
할머니2: 암 우리가 속아도 보통 속았나 여기가 지상낙원이라고 했잖소
할머니 3: 죽일놈의 한덕수 같으니라고 그놈이 조총련 의장을 하면서 얼마나 우리를 꼬드겼어 안그래 교토에 있는 교민들을 모두 찾아 다니면서 북조선 내조국으로 귀국하라고 얼마나 종용을 했느냐구
할머니 1: 지금 생각해도 한덕수 그놈이 악질중에 악질이야 그놈이 원흉이라구 일본에서 갖은 고생다해서 번 돈은 다 빼앗기고 북송을 알선시키고 있으니 그놈이 죄값을 어떻게 갚으려고 그러는지
할머니2: 내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에서 살아나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한덕수 그놈을 그냥 안둘거야...
설화 : 한덕수는 1960년 도에 김일성이 직접 임명한 조총련 의장이다. 그런사실을 까마득이 몰랐던 재일 교포들은 한덕수라는 사람이 투쟁경력도 없는데다 낯선 인물이라서 그가 의장을 하고 있는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여기 까지 와서 그것이 문제가 도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많은 북송 교포들이 바로 10여년 전 의 그문제 때문에 반동으로 몰려 여기까지 오게 된것이다. 따라서 여인들의 원한은 깊고도 사무쳤다.
할머니1: 그래 참 간밤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에 대고 인사하러 갔었소?
할머니2: 난 정말 그건 못하갔습디다. 처음엔 멋모르고 했지만 날이 갈수록 구역질이 다나고
할머니3: 나도 그래 그게 무슨 짓인지 모르갔소 오밤중에 잠도 못자고
그렇다고 안갈수도 없잖우
설화: 할머니들은 저저마다 불평을 늘어놓았다.
~음악~
라디오 방송극 “ 수용소의 노래 ” 원작 강철환, 각색 김기혁, 감독 송동렬, 오늘은 스물다섯 번 째 시간입니다.
설화: 우리가 한참열을 올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누군가각 오는 기척이 있었다. 올라온 사람은 멧돼지 교원이었다. 그는 설날에 근무를 서게 되어서 오늘밤에 집에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그 분풀이라도 하려는지 한참을 무슨 개소리 하더니 설날 교원실에서 쓸 땔나무를 교원실 화구에 갖다 놓고 집에 가라고 하였다. 말하는 그의 입에선 술 냄새가 확 풍겼다.
나와 정철이가 나무를 한짐 지고 교원실 쪽으로 내려가니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나는 화구에 불을 때면서 창문너머로 교원실을 흘깃 들여다 보았다.
최성근 교원을 비롯한 몇몇 교원들이 둘러앉아서 고기를 구우면서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를 그러지 않아도 굶주린 창자는 뒤집어 지는 것 만 같았다. 마치 저기 않아서 술 퍼먹는 교원들은 상전들이고 우리는 거지 상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억울하고 너무나 내처지가 한심해서 집에 가는 동안 내내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았다. 눈물을 하도 닦아서 옷소매가 얼어붙어 뻗뻗했다.
눈은 계속내리고 있었다. 너무 많은 눈이 내려 주위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울적한 내 마음과 함께 내리는 눈 속에 그대로 파 뭍혀으면 하는 생각이 어린마음에도 굴뚝같이 일었다. 집에 들어서니 집안이 하도 썰렁해서 도무지 내일이 설날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무도 없어서 불도 제대로 때질 못하니 방 안에는 하얀 고드름이 땡땡 얼어 있었다.
1980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벌써 3년째, 새해 첫 아침을 우리는 한숨으로 맞이하였다. 할머니는 그래도 설날 특별공급이라고 받은 한끼분의 입쌀로 설날 상차림을 해놓으셨다.
아침을 먹고 조금 있으려니 이웃의 북송교포 할머니와 아주머니 몇 분이 인사를 왔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었다. “말씀들 나누시라요” 그분들이 오자 아버지와 삼촌은 나무를 하러 간다며 자리를 비켜 들렸다. 나는 밖에 나가는것이 귀찮고 추워서 방 한구석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 있었다.
할머니와 이웃 아주머니들은 처음엔 조용조용 평범한 말만 주고 받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가 커졌다. 듣자하니 모두가 한이 맺힌 불평 불만이었다.
대부분이 남조선 출신인 그 할머니들은 남한 사투리로 말을 하였다. 또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 말도 많이 섞여 있었다. “ 우린 완전히 속았더 속아 뿌렀다고 이런 멍청이들이 어디 또 있겄어 그동안 뼈 빠지게 번 돈 다 조총련에 갖다 바치고 이제는 예까지 와서 이 고생이라니” 우리 할머니와 고향이 같은 제주도 출신 할머니는 말할 때마다 방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할머니 1: 그거야 어디 가스짱 뿐이갔소 나도 그렇고 우리모두가 속아서 온것이지 세상에 그렇게 감쪽같이 속을수가 ..
할머니2: 암 우리가 속아도 보통 속았나 여기가 지상낙원이라고 했잖소
할머니 3: 죽일놈의 한덕수 같으니라고 그놈이 조총련 의장을 하면서 얼마나 우리를 꼬드겼어 안그래 교토에 있는 교민들을 모두 찾아 다니면서 북조선 내조국으로 귀국하라고 얼마나 종용을 했느냐구
할머니 1: 지금 생각해도 한덕수 그놈이 악질중에 악질이야 그놈이 원흉이라구 일본에서 갖은 고생다해서 번 돈은 다 빼앗기고 북송을 알선시키고 있으니 그놈이 죄값을 어떻게 갚으려고 그러는지
할머니2: 내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에서 살아나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한덕수 그놈을 그냥 안둘거야...
설화 : 한덕수는 1960년 도에 김일성이 직접 임명한 조총련 의장이다. 그런사실을 까마득이 몰랐던 재일 교포들은 한덕수라는 사람이 투쟁경력도 없는데다 낯선 인물이라서 그가 의장을 하고 있는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여기 까지 와서 그것이 문제가 도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많은 북송 교포들이 바로 10여년 전 의 그문제 때문에 반동으로 몰려 여기까지 오게 된것이다. 따라서 여인들의 원한은 깊고도 사무쳤다.
할머니1: 그래 참 간밤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에 대고 인사하러 갔었소?
할머니2: 난 정말 그건 못하갔습디다. 처음엔 멋모르고 했지만 날이 갈수록 구역질이 다나고
할머니3: 나도 그래 그게 무슨 짓인지 모르갔소 오밤중에 잠도 못자고
그렇다고 안갈수도 없잖우
설화: 할머니들은 저저마다 불평을 늘어놓았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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