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김정일 장남 김정남 왜 사라졌나했더니...-데일리안
- 관리자
- 2012-09-09 12:54:03
- 조회수 : 2,813
평양에서 김정은 정권안착 방해안하겠다 맹세하는대신 계좌 넘겨받아
김정일 유서에는 "김정남 나쁜애 아니야 그의 애로를 덜어주라" 명시
김정일 유서에는 "김정남 나쁜애 아니야 그의 애로를 덜어주라" 명시
북한에서 김정일의 사망 이후 최근까지 장남 김정남의 행적이 묘연해졌다. 지난 수년간 온·오프라인에서 파격 발언을 해 종종 내·외신 보도로 회자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사실 북한에서 김정은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지 수해가 지나도록 김정일의 사후 권력구도의 변화를 예측하는 시각에 김정남이 빠지지 않았다. 특히 김정일 사후 북한과 중국 관계에 변화가 생길 경우 김정남이 변수의 카드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올해 중반을 넘기도록 언론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채 수면 아래 머물고 있어 김정은 체제 안정을 위한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던 것이 아닌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북 소식통은 6일 “김정남이 김정일 사망 직전 평양에 들어가 생전의 김정일을 잠시 만났으며, 이때 김정은의 정권안착에 방해가 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고 새로운 사실을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남은 생전의 김정일을 만난 이후 곧바로 고모 김경희와 장성택 부부를 독대한 뒤 중국으로 출국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김정일과 김정남의 독대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김정은의 정권안착에 방해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그 대가로 김정남이 평생 해외에서 살 수 있도록 김정일의 개인계좌 몇 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지난해 10월부터 당뇨 증세가 악화되면서 이로 인한 혈당 증세와 고혈압으로 집중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소식통은 “김정일의 병세가 악화되던 중 12월 10일부터 더욱 증상이 급속하게 나빠지기 시작해 결국 같은 달 15일 새벽 2시쯤 평양 강동초대소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김정일의 사망 이후 김정은을 위시해 형 김정철, 여동생 김여정,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춘 부위원장, 리용호 총참모장(해임 이전) 등이 긴급회동을 갖고 김정일 사후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 긴급회동에서 김정일 사망에 대한 시나리오가 정리됐으며, 북한 당국은 김정일이 12월 17일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정일 사후의 김정남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김경희 장성택 부부와의 비밀라인을 이용해 토의하도록 정했다”고 한다.
사실 지난 4월 한 국내 언론이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김정일의 유훈’에서도 김정일이 자신이 사망한 이후 김정남을 숙청하지 않도록 권고한 사실이 나온다.
김정일이 사망 두 달쯤 전 측근들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진 ‘10·8 유훈’에 따르면, 김정일은 앞으로 대내적인 모든 사안을 여동생 김경희에게 넘기면서 유훈의 집행과 김정남의 거취, 국내외 자금관리책 등을 당부했다.
일부 공개된 유서엔 “김정남을 많이 배려해야 한다. 그 애는 나쁜 애가 아니다. 그의 애로를 덜어주도록 할 것”이라고 나온다.
이와 동시에 김정남의 이메일을 공개하고 책으로 펴낸 바 있는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일과 김정남은 정이 깊은 부자지간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고미 편집위원은 “김정남은 김정일이 자신을 스위스로 유학 보낼 때 매우 아쉬워하던 기억이 난다고 했고, 자신도 당시 많이 울었다고 했다”며 “비록 ‘서양물’을 먹은 장남이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고 직언하면서 관계는 멀어졌고, 결국 떨어져 살게 됐지만 그 와중에도 국제전화는 자주 했다”고 말했다.
앞서 김정남은 고미 편집위원에게 보내는 이메일 등을 통해 북한의 체제 붕괴를 예언하고 김정은을 원색적으로 비난해 올 초까지도 내외신에서 회자됐었다.
고미 편집위원은 김정남과 8년간 알고 지내면서 그에게 받은 이메일 등을 공개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책에는 김정은이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북한 수뇌부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붕괴됐다. 나이든 리더, 경험이 부족한 후계자, 실추한 경제... 북한을 둘러싼 정국은 위험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등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많이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데일리안 = 김소정 기자]
사실 북한에서 김정은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지 수해가 지나도록 김정일의 사후 권력구도의 변화를 예측하는 시각에 김정남이 빠지지 않았다. 특히 김정일 사후 북한과 중국 관계에 변화가 생길 경우 김정남이 변수의 카드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올해 중반을 넘기도록 언론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채 수면 아래 머물고 있어 김정은 체제 안정을 위한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던 것이 아닌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북 소식통은 6일 “김정남이 김정일 사망 직전 평양에 들어가 생전의 김정일을 잠시 만났으며, 이때 김정은의 정권안착에 방해가 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고 새로운 사실을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남은 생전의 김정일을 만난 이후 곧바로 고모 김경희와 장성택 부부를 독대한 뒤 중국으로 출국했다고 한다.
◇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사진 왼쪽)과 3남 김정은.(자료사진) ⓒ연합뉴스 |
소식통은 “김정일과 김정남의 독대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김정은의 정권안착에 방해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그 대가로 김정남이 평생 해외에서 살 수 있도록 김정일의 개인계좌 몇 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지난해 10월부터 당뇨 증세가 악화되면서 이로 인한 혈당 증세와 고혈압으로 집중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소식통은 “김정일의 병세가 악화되던 중 12월 10일부터 더욱 증상이 급속하게 나빠지기 시작해 결국 같은 달 15일 새벽 2시쯤 평양 강동초대소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김정일의 사망 이후 김정은을 위시해 형 김정철, 여동생 김여정,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춘 부위원장, 리용호 총참모장(해임 이전) 등이 긴급회동을 갖고 김정일 사후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 긴급회동에서 김정일 사망에 대한 시나리오가 정리됐으며, 북한 당국은 김정일이 12월 17일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정일 사후의 김정남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김경희 장성택 부부와의 비밀라인을 이용해 토의하도록 정했다”고 한다.
사실 지난 4월 한 국내 언론이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김정일의 유훈’에서도 김정일이 자신이 사망한 이후 김정남을 숙청하지 않도록 권고한 사실이 나온다.
김정일이 사망 두 달쯤 전 측근들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진 ‘10·8 유훈’에 따르면, 김정일은 앞으로 대내적인 모든 사안을 여동생 김경희에게 넘기면서 유훈의 집행과 김정남의 거취, 국내외 자금관리책 등을 당부했다.
일부 공개된 유서엔 “김정남을 많이 배려해야 한다. 그 애는 나쁜 애가 아니다. 그의 애로를 덜어주도록 할 것”이라고 나온다.
이와 동시에 김정남의 이메일을 공개하고 책으로 펴낸 바 있는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일과 김정남은 정이 깊은 부자지간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고미 편집위원은 “김정남은 김정일이 자신을 스위스로 유학 보낼 때 매우 아쉬워하던 기억이 난다고 했고, 자신도 당시 많이 울었다고 했다”며 “비록 ‘서양물’을 먹은 장남이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고 직언하면서 관계는 멀어졌고, 결국 떨어져 살게 됐지만 그 와중에도 국제전화는 자주 했다”고 말했다.
앞서 김정남은 고미 편집위원에게 보내는 이메일 등을 통해 북한의 체제 붕괴를 예언하고 김정은을 원색적으로 비난해 올 초까지도 내외신에서 회자됐었다.
고미 편집위원은 김정남과 8년간 알고 지내면서 그에게 받은 이메일 등을 공개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책에는 김정은이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북한 수뇌부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붕괴됐다. 나이든 리더, 경험이 부족한 후계자, 실추한 경제... 북한을 둘러싼 정국은 위험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등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많이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데일리안 = 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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