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10-07-16 10: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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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여) 내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9년간을 살아야 했던 리유는, 김정일의 부인 성혜림과 친구였고, 그녀가 5호 댁이라 불리우던 김정일에게 시집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초, 앞으로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가 될 김정일이 다른 사람의 부인인 성혜림을 데리고 산다는 것은 김일성도 모르는 비밀이었고,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른바 김정일의 권위와 관련된 문제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화국에서는 극악무도한 범죄가 되기 때문이었다. (음악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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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실화극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 오늘은 전 시간에 이어 제2화 “국가 보위부 예심과 312호실”을 들으시겠습니다.
(주인공) 1970년 8월 1일 밤, 나와 가족들에게는 남은 생애의 운명이 결정되던 순간이었다. 당시의 나는 막내아들을 갓 낳은 산모였지만 근무처인 려행자 상점 책임자로부터 출장지시를 받게 되었다. 7월 4일 남편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간 지 한 달이 채 못 되던 어느날 저녁이였다.
남 1: “지도원 동무, 어이, 영순동무! 아니 이거 귀구멍에 말뚝을 박았나? ”
주인공: (멀리서 들리는 대답소리) “예, 점장동지.”
(씩씩 거리는 숨소리...) “제가 이거, 몸이 좀 무거워서리...외기럽니까?”
남 1: “오, 딴거 아니구, 래일 당장 출장 좀 다녀와야 되가서.”
주인공: “출장이요? 아니, 어디로 말입니까?”
남 1: “먼덴 아니구, 신의주 화장품 공장 기술 준비실에 가서 말이야...”
주인공: (놀란다) “어마나? 신의주요!? (애교석인 목소리로) 아야~ 점장동지, 제가 지금 임신 6개월이라 지방출장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남 1: “뭐요? 아니, 몸이 좀 무겁다구 상급의 지시를 무시 한다? 이거 영순동무 답지 않게 무슨 소리야 이거. 동무가 언제 상급의 지시에 시비 단적 있는가? 허~이거 우리 영순동무가 요새 좀 변한 것 같다?” (효과 음악)
상점을 관할하는 소장이면서 초급당비서였던 김문욱의 지시였다. 개인 사정을 이야기 하기는 했지만, 어길 수 없는 지시이기도 했다. 당시의 평양 려행자 상점은 귀빈들이나 외국려행객들의 생필품을 팔아주는 최고급 상점으로서 평양시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을만큼의 특수한 상점이었다. 외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내각의 비준문건에 따른 판매를 했고, 판매되는 모든 제품은 일본제, 혹은 공화국에서 생산된 특제품들이었다. 그러한 상점이였던 만큼 들어가기도 힘들었고, 규률도 엄격했다.
이튿날, 여름이라 안이 비치는 일본제 나일론 치마와 데트론으로 된 흰 저고리를 바쳐 입은 나는 핸드백 안에 초콜릿 한 봉지와 당증, 세면도구를 챙겨 넣었고 평양역으로 행했다. 젖먹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사흘쯤 걸릴 출장을 떠나려니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마저 행방불명되어 불안이 엄습했다. 혹시 이대로 평양을 떠나면 다시 못 올 곳은 아닌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신의주행 기차를 타려고 저녁 8시경 서평양역으로 나갔다. (먼 기적소리)
청진을 출발해 서평양을 경유하는 신의주행 기차는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있었다. 역무원이 모두 녀자들인 서평양역에 도착해 표를 샀고, 30분쯤 남은 기차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군복차림의 중좌가 다가왔다. 갸름한 얼굴에 눈썹이 짙고 면도날처럼 차가운 인상을 한 사람이었다.
남 2: “김영자 동문가요?”
주인공: “예, 맞습니다만...?”
남 2: “출장증명서와 신분증 좀 봅시다.”
주인공: 그는 날카롭게 내게서 받은 증명서를 훑어보고 신분을 확인하더니 역사 문을 가리켰다.
남 2: “좀 알아볼 것이 있으니까 밖으로 나갑시다.”
주인공: 무뚝뚝 하면서도 강압적인 냄새가 풍기는 중좌를 따라 역사 밖으로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나가보니...역전 앞 광장에 로씨야식 찌프차 한 대가 서 있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차에서 두 명의 군인이 뛰어 내렸다. 그리고는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훌쩍 들어 차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끌려 영문도 모르고 군인용 찝차에 몸을 실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죄지은 일도 없었고 영문도 모를 일이였지만 엄습하는 두려움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효과 음악)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갑갑한 차안에서 중좌는 리유를 말하기는커녕,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무엇을 물어보거나 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9시가 넘은 시각에 짙게 깔린 긴장과 침묵 속에 어디론가 실려 가는 나, 서른 네 살이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건만, 공포에 질린 등허리로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한참을 달린 찌프차가 드디여 멈춰섰다. 언뜻 창밖을 살펴보니 보통강구역 대라령동 근방인 듯 했다. 꽤 먼 거리를 달린 셈이었다. (승용차 멎는 소리)
남 2: “내려서 따라오시오.”
주인공: 중좌의 뒤를 따라 아파트로 올라갔다. 너무나 당황하고 겁이나 몇 층인지 조차 살필 겨를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복 차림의 이십대 청년 두 명이 좌측 방문 앞에 있다가 군관에게 경례를 붙였다.
남 2: “들어가시오!”
주인공: 기가 막힌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 말인가 싶었다. 엘리트로 살던 34년간 아무 일없이 살다가, 출장길에서 맞닥뜨린 기가 막힌 현실이였다. 방안에 들어갔지만 앉지도 서지도 못할 처지에 빠진 나는 엉거주춤 하고 그냥 떨기만 했다. 그런대로 살펴본 텅 빈 방에는 탁자가 하나 있고 의자 두 개, 침대와 모포, 그리고 베개 한 개가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시계나 달력도 없었다. 불안에 떨며 20분쯤 서성대노라니 그곳으로 나를 데려왔던 그 중좌가 환자복 같은 옷 한 벌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는 짧게 외쳤다.
남 2: “갈아입으시오. 입고 온 옷과 가방 같은 사품(私品)을 모두 내 주시오.”
주인공: 병원으로 위장되어 있는 수사기관인 듯했다. 치마저고리, 슬리퍼, 가방을 모두 주었더니 이번에도 “자라”는 단 한마디만 하고 방을 나가버렸다. 털썩 주저앉은 나의 온 몸으로 더 큰 불안이 엄습했다. 함정에 빠진 느낌이 드는가 하면, 공포와 불안이 연이어 몰아쳤다. (음악)
(설화 여) 지금까지 원작에 김영순, 각색에 김민, 자유북한방송 아나운서들의 출연으로 들으셨습니다. 방송실화극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
청취자 여러분 그럼 다음 시간을 기다려 주십시오. 여기는 서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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