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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주사파의 대부’로 불렸던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26일 ‘왕재산’ 사건에 관해 말하고 있다.
 
 김영환(48)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26일 ‘북한 225국 지령 지하당’(왕재산) 사건과 관련해 “왜 아직도 시대착오적 이념을 붙잡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체사상 교범으로 알려진 ‘강철서신’의 저자로 1991년 남한 주사파 지하당에선 처음으로 김일성을 만났다. ‘주사파의 대부’로 통하던 그는 99년 전향을 선언한 뒤 북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 경기도 용인의 자택 근처에서 기자와 만난 김 연구위원은 검찰이 왕재산의 총책으로 발표한 김덕용(48)씨가 93년 김일성의 ‘접견교시(接見敎示)’를 받은 데 대해 “북한이 그의 잠재력을 인정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입북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접견교시는 김일성의 말 하나하나가 행동 지침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북 당시 어떤 경로를 이용했나.

 “강화도에서 잠수함을 타고 황해도 해주에 도착한 뒤 헬기 편으로 김일성이 있던 묘향산으로 이동했다. 강화도 루트가 98년 봉쇄됐으니, 93년 김일성과 만났다는 김덕용씨도 나와 같은 루트를 이용했을 것이다.”

 -김일성과의 접견은 어땠나.

 “그는 직접 지시를 내리기보다는 자신의 항일 운동 시절 이야기나 외국 수뇌를 만난 얘기를 주로 했었다. 만남이 즐거웠는지 이튿날 오전에도 이례적으로 나를 다시 불러 2시간가량 더 얘기했다.”

 -김덕용씨를 아나.

 “89년 당시 중앙대 운동권이던 그가 나를 찾아와 4~5번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열혈 주사파’였지만 치밀함이나 이론은 부족한 인물로 보였다.”

 -왕재산 사건 수사는 알고 있었나.

 “지난달 초 국정원으로부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김씨를 만나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가 입을 열지 않을 걸 알았기에 거절했다. 내가 민혁당에 있을 때 직접 보안교육을 철저히 했기 때문에 그가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왕재산 사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왜 아직도 이토록 시대착오적인 이념(주체사상)을 붙잡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고 안타까웠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더 이상 주체사상은 미래가 없다.”

 김 연구위원은 왕재산 문건 중 ‘2014년 보병사단 등 폭파’ 북한 지령에 대해선 “그 지령이 지난해에 나왔다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이 등장하면서 뭔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전술로 선회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움직임에 대한 정부 당국의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한 사회 일각에 여전히 주사파의 세력이 건재해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현재 민주노동당 주변에 있는 남한 주사파의 핵심 세력이 야권 통합 이후 정치권이나 정부의 핵심조직에 들어간다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철서신=1980년대 중반 국내에 주체사상을 알린 최초의 문건. 82년 서울대 법대 입학 후 학생운동을 하던 김영환 연구위원이 86년 초 ‘강철’이란 필명으로 ‘수령론’ ‘품성론’ 등 일련의 강철서신을 작성해 주체사상을 대학가와 노동계에 퍼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