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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순이 세자매, 탈북자론 첫 제조업체 사장 되다
- 관리자
- 2011-10-28 09: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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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옥화·수진 자매… 매출 15억 방열판 제조 'CK정공' 이끌어
15년전 두만강 넘은 그녀들 - 옌볜서 지내다 막내가 한국行, "여기 정말 좋아" 두 언니도
둘째 옥화씨의 억척 생활력 - 경리일 하던 회사 부도 위기… 적금 깨 인수, 2년걸쳐 살려내
"6개월간 샘플 100여개를 요구했던 고객이 있었어요. 아무 소리 않고 계속 만들어줬죠. 경남에 있는 본사로 오라고 해서 갔어요. 회사 대표가 임원들 앞에서 '탈북자라고 무시하지 마라. 당신들이 배워야 할 사람이다'라고 했어요. 눈물이 터져서 펑펑 울었어요. 안 울려고 얼마나 이를 꽉 물었는데…."25일 김포시 대곶면의 'CK정공'은 정수기와 에어컨 뒷면에 들어가는 응축기 등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661㎡(약 200평) 규모의 공장은 소음으로 가득 찼다. 한구석에 함북 회령이 고향인 탈북자 이옥화(34)씨가 작업복 차림으로 방열판을 만지고 있었다. 여공처럼 보였지만, 옥화씨는 이 공장 사장님이다. 그는 2007년 8월 이 회사 경리로 입사, 빚더미에 앉아있던 회사를 2009년에 인수해 연 매출 15억원의 기업으로 키웠다.
탈북자들이 주로 냉면집 등 북한 음식 전문점 등을 개업하고 있지만, 1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제조업체 사장이 된 사람은 옥화씨가 처음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제대로 종업원을 둔 공장은 CK정공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공장 한쪽이 소란스러워지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북한이탈주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의 3개월 과정을 며칠 전에 졸업한 탈북자 등 20여명이 견학을 왔다. 옥화씨와 같은 작업복 차림의 30대 여성 2명이 이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옥화씨와 함께 지난 2005년과 2006년 중국 옌볜에서 탈북한 큰언니 미경(38·가명)씨, 막내 수진(31)씨다.
세 자매는 1996년 두만강을 넘었다. 중국 옌볜에서 10여년 동안 식당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 한국에 적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넘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막내 수진씨가 "한번 부딪쳐 보겠다"며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포장마차가 신기했어요. 닭똥집도, 어묵 국물도. 언니들이 반대할까봐 몰래 건너왔죠."
- ▲ 세 자매 파이팅 - 함북 회령이 고향인 탈북자 세 자매 이미경(가명), 옥화, 수진(왼쪽부터)씨가 25일 자신들이 운영하는 경기도 김포시의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 정수기 부품을 들어보였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들에겐 꿈을 만드는 공장이다.
자매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한국 생활에 정착해갔다. 둘째 옥화씨가 '또순이'였다. 생활력이 남달랐다.
"처음엔 이 공장 경리로 시작했어요. 입·출금 장부가 뭔지도 모르고, 전화받는 법도 몰라 매일 혼났죠. 멍청하단 소리 듣는 게 싫어서 퇴근 후엔 CAD, 컴퓨터, 지게차 운전 등 닥치는 대로 배웠어요."
옥화씨는 처음 받은 월급 80만원의 절반인 40만원을 적금으로 부었다. 차츰 월급이 늘어났고, 무조건 절반은 적금에 넣었다. 입사하고 3년이 되는 해 3800만원이 쌓였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2009년 다니던 회사가 2억3000만원의 빚을 져 부도 직전에 몰리게 됐다. 평소 억척스럽게 일하는 모습을 보아온 사장이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네가 한번 맡아보겠느냐"고 말을 꺼냈다. 2009년 6월 이씨 자매는 고심 끝에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빚더미에 앉은 회사를 인수했다. 대표이사는 옥화씨가 맡고, 두 자매는 주주가 됐다.
이들은 회사 이름을 CK정공으로 바꿨다. '콘덴싱 킹'의 영문 약자다. '콘덴싱 분야에서 왕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씨가 직접 지었다. 자금이 부족했지만 이씨의 열정을 높이 사준 거래처 사람들이 외상으로 공장 설비를 대줬다.
세 자매는 열심히 일했다. 하루 3시간씩 자며 지게차를 운전했고, 사람이 비는 라인이 있으면 직접 들어가서 일했다. 이제 회사는 월 매출 1억2000만원으로 성장했고 빚도, 외상도 다 갚았다. 많을 때는 직원 18명이 상주하며 15개 업체에 물품을 대고 있다.
언니와 동생은 결혼했지만, 옥화씨는 아직 혼자다. "탈북 6년짼데 남자친구 한 번 안 사귀어 봤어요. 일이 좋아요. 언젠가는 대기업에 제품을 많이 납품해 보고 싶어요." 옥화씨의 꿈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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