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미소 짓는 유엔군 대표단, 맥주 나르는 북한군… 초기 정전 협상 모습
  • 관리자
  • 2011-07-27 09: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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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인 1951년 7월 개성에서 이뤄진 유엔군측과 공산군측의 초기 정전(停戰)회담 내용과 분위기를 영화를 찍은 듯 상세히 기록한 문서와 사진들이 26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우리 근·현대사 자료를 전문적으로 수집해온 '시간여행' 김영준(61) 대표가 최근 입수해 이날 공개한 '개성정전회담 공보집록(公報輯錄) 제1집'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개성 정전회담의 분위기와 뒷얘기 등이 담겨 있다. 국방부 정훈국 서울분실(分室)이 1951년 8월 발간한 147쪽 분량의 이 책자에 따르면 미군 항공기가 평양방송을 감청해 정전회담 관련 내용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의 군 감청 능력을 실증하는 대목이다.

60년 전인 1951년 7월 개성에서 열린 정전회담 희귀 사진들을 김영준 시간여행 대표가 입수해 26일 공개했다. (사진 위)1951년 8월 2일 정전회담이 결렬된 뒤 지프를 타고 나오는 유엔군측 대표단. 헨리 호디스 미 육군소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미소 지으며 백선엽 소장(맨 왼쪽)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알레이 버크 미 해군소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웃고 있다. (사진 가운데)1951년 7월 23일 북한 병사 2명이 개성 정전회담장으로 맥주 한 상자를 나르고 있다. (사진 아래)1951년 7월 30일 제12차 개성 정전회담에서 북한 여군이 유엔군측 취재진이 전해 준 미국 잡지를 심각한 표정으로 읽고 있다. /김영준 시간여행 대표 제공
유엔군측은 또 미 8군 사령관이 낙동강 전투 때 쓰던 객차 22량을 문산으로 옮겨 개성 정전회담의 '전진기지'로 쓰려 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계획은 취소가 됐고 문산지역에 텐트를 쳐 전진기지로 사용했다.

당시 유엔군 대표단은 5대의 헬기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3인승 H-5헬기 4대와 당시 한국에 1대밖에 없었던 10인승 H-19였다. 1~3호기엔 연락장교들이, 4호기엔 백선엽 장군과 유엔군측 수석대표인 조이 제독을 뺀 나머지 대표단이, 5호기엔 백 장군과 조이 제독 등이 탔다. 이 헬기들이 개성 회담장으로 향할 때와 떠날 때 이륙하는 순서가 정반대였다. 회담장에 갈 때는 5호기가 가장 늦게 떴지만, 회담장에서 나올 때는 5호기가 가장 먼저 이륙했다. 회담이 공산군측 지역인 개성에서 열려 안전문제를 고려한 것이었다고 이 책자는 기록했다.

국방부 산하기관인 군사편찬연구소 남정옥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는 개성회담에서 양측이 공식적으로 논의한 내용만 알려져 있었는데 이 책자는 회담장의 양측 대표단 표정과 기자 일문일답 내용 등까지 담고 있어 개성회담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사료(史料)"라고 말했다. 이 자료를 만든 국방부 정훈국 서울분실장 신명구 중령은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의 아들이다. 김영준 대표는 "자료를 국립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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