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미헤예프(Vasily Mikheev·57) 러시아 국제경제·국제관계 연구소(IMEMO) 부소장의 얘기다. IMEMO는 지난 9월 러시아 국책연구기관 최초로 북한 붕괴 시나리오를 언급한 보고서 ‘전략적 세계전망 2030’을 발간해 반향을 일으켰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미헤예프 부소장은 1981~1984년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을 지내고, 1980년대 말에는 한·소 수교(1990년)에 관여하는 등 30년 넘게 한반도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28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소장 남성욱)가 서울 신라호텔에서 연 ‘2012년 동북아 주요 국가들의 리더십 변동과 북핵’ 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그는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이 이뤄진 2020년 이후 10년 사이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했다. 논리는 명료했다. “20년 넘게 후계자 수업을 받은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의 후계작업은 몇 년밖에 안 됐다. 권력 이양 후 서구 사회와 사업을 해온 관료집단이 사적 이득을 위해 시장화를 추진할 것이다. 시장화는 체제 변화로 직결되고 이 관료들과 경제적 이득을 얻지 못한 군부가 대결하면서 장기간 혼란은 가중된다.”
-김일성 사망(1994년) 때도 북한 붕괴론이 힘을 얻었다.
“20년 전과는 주변 정세가 다르다. 중국을 보자. 시장경제의 개방국가로 바뀌었다. 소규모 조직·지역에선 직접선거를 하는 정치 개혁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도 시장경제로 변했다. 또 김정일과 김정은은 다르다. 김정일이 20여 년 전 후계자 수업을 받을 때는 북한 전 조직의 공인된 2인자였다.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일 뿐이다. 100% 장악한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
“양면적이다. 중국은 북한 붕괴로 수백만 명의 난민이 유입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하도록 추동하고 있다. ‘경제 개혁만이 정권의 안정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경험에 근거한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옛 소련, 동유럽을 볼 때 시장경제 도입은 정치 개혁 요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최근 관심을 끈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을 시장화와 연계할 수 있나.
“통일 후에야 가능할 거다. 현재로선 정치·경제적 위험이 너무 크다. 러시아와 독일 간에는 가스 파이프라인이 연결돼 있다. 그런데 벨라루스·우크라이나 등 파이프가 지나가는 국가들은 가스를 몇 차례 훔쳤다. 이들은 북한보다는 훨씬 더 정상적인 국가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북한의 핵 무기는.
“북한의 핵무기 수준은 조악하다. 핵 폐기를 명분으로 다른 것을 얻어내기 위한 거래 수단(bargaining chip)일 뿐이다. 많은 러시아 전문가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이 실패했다고 본다. 그래서 들고나온 게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다.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은 우라늄을 이용한 핵실험으로 도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핵무기 부분은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