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탈북자 2만3000명 시대,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 관리자
  • 2012-05-23 09: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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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포기하는 탈북학생들, 얘기 들어줄 친구만 있어도…”

《탈북자 2만3000명 시대, 어떻게 탈북자와 더불어 살 것인가. 올해 4월까지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는 2만3568명이다. 2000년 이후 본격화한 탈북 입국자 수는 2007년 1만 명이던 것이 불과 3년 만인 2010년 두 배인 2만 명으로 늘어났다. 중국 등 제3국에서 입국을 기다리는 탈북자도 수만 명을 헤아린다. 하지만 탈북 청소년이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비율이 일반 청소년보다 2∼4배나 많고 탈북자의 실업률도 일반 국민의 4배나 된다.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면 본인이 불행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는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탈북자 및 지원단체, 정부 관계자와 함께 탈북자와 더불어 사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탈북자 출신 첫 국회의원이 된 조명철 당선자가 자신의 경험과 제언을 들려줬다.》

○ 적응 실패자에게 재교육 기회 줘야


탈북자와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제는 양적이 아닌, 질적인 정착 지원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탈북자가 입국한 뒤 정착 적응 시설인 하나원 교육과 초기 지원이 끝나면 이후 사회 적응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떠맡겨진 상황이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삼흥학교의 채경희 교장은 “상당수의 탈북자가 한국민과 접촉하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적응교육을 마친 탈북자들이 현실 사회에 나왔다가 적응에 실패했을 때 되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 교장은 “현 제도에서는 적응에 실패한 탈북자는 곧바로 사회안전망 바깥으로 추락하는 구조”라며 “탈북자끼리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입국해 올해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에 입학한 이성민 씨는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같은 전공의 탈북 학생 3명이 학업을 포기했다”며 “장학금을 주는데도 중도 포기를 선택하는 것은 돈이 있어도 정서적인 지원 없이는 정착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인성 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원도 “탈북자를 심층 면접해보면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응어리가 풀린다는 사람들이 있다”며 “탈북과 입국 과정에서 심각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은 탈북자들은 꾸준히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리 북한인권시민연합 교육훈련팀장은 “탈북자는 입국 후 5년이면 정착 지원이 완전히 끊기는데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정착을 잘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지원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여전히 절박한 경제적 지원

탈북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도 적지 않다. 2010년 경찰청이 전국의 탈북 가정 1만2205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월소득 100만 원 미만인 가정이 전체의 50.5%인 6164가구나 됐다.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인 황현우 씨는 2010년 혼자 탈북해 부양해줄 가족이 없다. 그는 “북한에서 전문대까지 졸업했지만 학업격차를 쫓아가기 벅차 1년 7개월 동안 대입을 준비하다 보니 소득이 없는 상태”라며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이대로는 정착금을 까먹을 수밖에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탈북대학생모임 나우의 지성호 회장은 “수많은 탈북자가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제3국으로 다시 떠나는 상황”이라며 “최선의 복지는 취업인 만큼 일자리 제공을 좀 더 배려해 달라”고 말했다. 지 회장은 “100만 원만 북한에 송금해도 남은 가족이 1년은 옥수수를 먹을 수 있다”며 “탈북자들은 금전적인 부분을 떼놓고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동국대 북한학과 학생회장인 정찬형 씨는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멘토링을 하고 있는 탈북 중학생의 장래 희망은 대통령도, 과학자도 아닌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라며 “경제적 부담에 짓눌린 탈북 청소년들이 제대로 꿈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탈북자 아닌 탈북자 ‘비보호 청소년’

탈북자이면서도 탈북자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사람들도 있다. 허수경 무지개청소년센터 남북통합지원팀장은 “탈북 여성이 중국 남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탈북자도 아니고 다문화가정 자녀도 아닌, 그야말로 이방인”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탈북자와 제3국인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비보호 청소년’으로 분류돼 탈북자 정착 지원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4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처음으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585명, 중학교 13명, 고등학교 10명 등 비보호 청소년이 모두 608명에 이른다. 이들을 돕기 위한 시민단체의 입법 청원이 있었으나 아직 국회에서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다.

신효숙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교육지원팀장은 “올해부터 비보호 청소년을 상대로 통일부가 방과후 공부방, 대안학교 등 지원제도를 점진적으로 마련하고 있다”며 “현재 101명의 사회복지사와 심리상담사가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하는 만큼 적극 활용해 달라”고 말했다.

탈북자 정책을 ‘특혜’로 바라보는 국민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이화여대에서 북한학을 공부하는 김엘림 씨는 “통일부 상생기자단으로 활동 중인 나도 탈북 학생 지원제도를 접하다 보면 ‘퍼주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탈북자는 도움이 필요한 소외계층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우리에게 맞는 호칭으로 불러 달라”

한국에 입국한 뒤 작가로 활동하는 탈북자 림일 씨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어 최소한 10여 개가 혼용되고 있다”며 “호칭에서 정체성이 나오는 만큼 이름부터 통일시켜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탈북자 호칭은 계속 달라졌고 그 대우도 마찬가지였다. 1962년 제정된 국가유공자·월남귀순자 특별원호법에 따라 탈북자는 ‘귀순자’로서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다가 1979년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에 따라 ‘귀순용사’로 불렸다. 이후 1993년 제정된 귀순북한동포보호법에서는 ‘귀순동포’로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위상이 바뀐다. 이후 공모를 통해 ‘새터민’이 됐다가 이명박 정부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쓰이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은 탈북자에 대한 영어 명칭을 ‘북한 난민(North Korean refugee)’으로 정했으나 헌법에 따르면 모든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난민이라는 표현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남북한 주민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고 긍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것이 융합으로 가는 관건이 될 것”이라며 “독일의 선례를 따르더라도 언젠가는 탈북자라는 명칭 구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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