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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8 10: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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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 시절 이웃들과 눈도 맞추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7일 보도했다.
RFA는 김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 시절인 1996∼1998년 형 정철, 이모인 고용숙의 가족과 스위스의 수도 베른 교외 리베펠트의 키르히슈트라세 10번지에 있는 3층 연립주택에 머물렀다는 스위스 공영방송 SBC의 최근 보도를 소개했다.
방송은 이 주택 이웃의 말을 통해 김정은이 당시 이곳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공립학교에 다녔으며, 그가 집 앞 공터에서 '끊임없이'(constantly) 농구를 하곤 했다고 보도했다고 RFA는 전했다.
빅토르 쉬미트로 알려진 이 이웃은 "1990년대 말 북한 외교관 일가족이 당시로선 새 건물이었던 이곳에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며 "어린 남자아이 네 명이 집 앞 공터에서 끊임없이 농구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고 RFA는 전했다.
네 남자아이는 김 위원장과 형인 정철, 그리고 고용숙의 두 아들인 이종사촌 형제들로 추정된다고 RFA는 분석했다.
또 RFA는 아이들이 농구를 할 때면 항상 여자 1명과 남자 3명 등 4명의 어른이 이들을 돌봤다는 쉬미트의 말을 전하며 "고용숙과 그의 남편 리강 외에도 최소 2명의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경호원으로 김정은을 가까이에서 돌봤다"고 추정했다.
쉬미트는 "아이들은 북한 외교관 번호판이 붙은, 짙게 선팅된 검은색 폴크스바겐 미니버스를 주로 이용했다"며 "아이들이 이웃과 마주쳐도 인사를 하거나 눈길을 준 적이 없어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구가 아니었다면 북한의 젊은 지도자를 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고용숙은 지난 5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를 통해 1992년 김정철과 스위스 베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으며, 4년 뒤인 1996년부터 약 2년간 김정은도 보살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용숙·리강 부부는 20년 전 미국으로 망명했다.
고씨는 "우리는 보통 가정처럼 행동했고, 나는 그들(김정철·김정은 형제)의 어머니처럼 행동했다"며 "김정은은 성질이 급했고 인내심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또래보다 키가 작았던 김정은이 농구를 하기 시작하자 점점 빠져들었고, 농구공을 갖고 잠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redfla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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