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유엔 사무차장이 北외무상에 건넨 '몽유병자들' 국내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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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5 09: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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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공동책임론' 다룬 명저…"상호 신뢰 낮으면 전쟁 가능성 커져"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북핵 위기론이 한창이던 2017년 12월 제프리 펠트먼 당시 유엔 사무차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펠트먼은 당시 리용호 외무상을 만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보내는 친서를 전달했다.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군 연락 채널을 복원하고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유엔 안보리 비핵화 결의를 이행하라는 세 가지 요구 사항도 전했다.

이와 함께 펠트먼이 리 외무상에 건넨 것이 하나 더 있다. 비밀문서도, 모종의 합의를 위한 요구서도 아니었다. 그냥 '책' 한 권이다.

펠트먼이 전달한 책은 영국의 석학 크리스토퍼 클라크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지은 '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 영어 원서로 된 두꺼운 역사책이었다. 책의 부제는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다.

무려 100년도 더 넘게 오래된 옛날 먼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 원인을 다룬 책을 유엔 지도부가 왜 북한 측에 전달했을까. 당연히 외교적 메시지가 담겼을 것이다.

당시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외부 기고 칼럼에서 '펠트먼이 의도치 않은 충돌의 위험을 지적하는 메시지를 극대화하려고 리 외무상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책이 출간된 2014년은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해 세계적 석학들이 1차 대전을 새롭게 조명한 책들을 잇달아 출간했으며, 이 가운데 최고 평가를 받은 책이 바로 '몽유병자들'이었다. 뉴욕타임스, 인디펜던트, 파이낸스 타임스 등 영미권 주요 일간지들도 몽유병자들에 대한 호평을 쏟아냈다.

유엔 사무차장이 北외무상에 건넨 '몽유병자들' 국내출간 - 1

책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7월 위기'를 소재로 '왜'가 아니라 '어떻게' 전쟁이 발발했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누구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느냐는 책임론으로 흐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게 저자 설명이다.

저자는 오히려 유럽 국가들의 개전 '공동책임론'을 강조한다.

전쟁이 일어나고 확산하는 과정에서 다자간 상호 작용을 간과하고 한 나라에 전쟁 책임을 지우거나 교전국들에 대한 '유책 순위'를 매기는 것은 그리 역사적 근거가 없는 일이라는 점을 치밀한 역사 서술을 통해 입증하는 데 집중한다.

우리가 예전에 알던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책임이 크다는 선입견 대신 프랑스와 러시아 역시 만만찮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정 국가의 전쟁 범죄가 아닌 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비극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특히 저자는 당시 유럽 각국 지도자들 앞에 다양한 선택지가 열려 있었으며, 충분히 다른 미래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적극적으로 전쟁을 계획한 나라가 없었음에도 상호 신뢰 수준이 낮았고 피해망상 수준이 높았던 각국 지도부는 서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당시로선 인류 최악의 비극을 초래하는 '판도라 상자'를 열고 말았다.

망상에 사로잡힌 채 앞으로 초래할 거대한 사건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에 책을 건넨 유엔의 의도도 분명한 듯하다. 북한 지도부가 이러한 몽유병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조언 또는 경고였다는 해석이 타당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책과함께'에서 오는 28일 공식 출간한다. 이재만 옮김. 1천16쪽. 4만8천원.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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