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86회]
  • 관리자
  • 2010-06-04 10: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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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대와 사회과학원에서 각각 5명씩의 학자를 선정해 철학교과서를 저술하도록 했다. 김대의 학자들은 내 이론을 지지하는 편이었으나, 사회과학원에서는 한 명이 김대 편을 들었고 다른 한 명은 중립이었으며, 나머지 세 명은 마르크스주의를 고집했다.

이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일은 안하고 논쟁으로 시간을 보냈다. 결국 새 철학교과서 편찬사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들은 나에게 초고도 가져오지 못했다. 교과서를 편찬하지도 못하고 또 학자들의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한때 스탈린이 학자들끼리 논쟁을 벌이게 하고 자신이 결론을 내려 자신의 이론적 권위를 높인 것처럼, 또 김일성이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관한 논쟁에 대해 결론을 내리며 이론적 권위를 높이려 한 것처럼, 학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논쟁을 벌이도록 하고는 자기가 결론을 내주려는 심산인 듯했다.

하루는 중앙당 과학교육부 부부장이 찾아와 김대와 사회과학원이 주체철학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루어진 몇 차례의 논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보고에 의하면, 사회과학원의 반대파들은 논리적으로 몰리게 되면 가지들이 했던 발언을 자꾸 부인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양쪽이 토론원고를 써서 발언하도록 시켰고, 그에 따라 원고를 바탕으로 논쟁을 하게 되었다. 원고를 제출한 다음 논쟁을 하다 보니 사회과학원 사람들이 꼼짝 못하고 손을 들었다.

그리하여 사회과학원 학자들 가운데 몇 명이 주체철학을 반대한다는 죄명으로 처벌되고 강제노동까지 가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지만, 토론회를 주관한 과학교육부 부부장은 원래 좀 극단적인 편향이 있던 사람이라서 나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원 사람들을 냉정하게 처벌했다. 나는 그 후 이 사건이 나의 큰 잘못이라는 걸 알았다. 새로운 사상이 나오면 당연히 반대의견이 있게 마련인데 그걸 사전에 감안하지 못한 것은 실책이었다.

그리고 내 사상이 맞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인 것을 괜스레 공개토론회를 열고 부산을 떨어 그저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처벌까지 받게 만든 것도 후회가 되었다. 결국 이 사건은 훗날까지 김대와 사회과학원이 서로 대립하는 원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주체철학으로 의견 차이를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두 기관은 적대적인 대립관계로 치달았다. 특히 당시 정치국 위원으로써 교육담당비서였던 양형섭이 실각하여 사회과학원 학자들이 그 주위에 모여들어 조직부와 선전부의 줄을 통해 내 영향하에 있는 사람들을 헐뜯는 보고서를 계속 당에 제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숱한 일들을 겪으면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 후로는 이론문제와 관련해서는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마음대로 논쟁하도록 허용했으며, 내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이 없도록 노력했다. 나는 사상이론 문제에 관한 통제권을 김정일로부터 받았지만, 이 권한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김정일은 눈에 띄게 실권을 장악해 나갔다. 그리고 실권을 장악하면 할수록 전횡이 날로 심해졌다.

김일성의 가장 큰 약점은 무릇 대부분의 독재자가 그렇듯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말만 믿거나 가족주의 경향이 농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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