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36회]
  • 관리자
  • 2010-06-04 10: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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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불상사가 없도록 하려고 나는 교실로 들어가 먼저 15분정도 이야기를 했다. “제군들, 시험은 국가에서 실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정정당당하게 쳐라.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다. 모르면 백지를 내더라도 자존심을 팔지 마라. 나는 여러분의 선배이고 또 선생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국가에서 임명한 시험위원이다. 그러므로 부정행위를 단속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나는 이 의무에 충실할 것이다. 이점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학생들은 고맙게도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내 시간에 부정행위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지를 낸 학생이 몇 명 있었다. 나는 그 학생들의 담임선생을 찾아가 백지를 낸 학생은 따로 시험을 치게 하여 졸업장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큰 희망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나는 학창시절 그런 권고를 받지 못하여 쓸데없는 주산선수가 되려고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던가.

주산선수가 되려고 한 그 시간에 영어와 수학을 했더라면 좀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에 와서 옛날 제자들을 만나보니, 그들은 내가 그때 큰 희망을 가지라고 말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 내가 써준 ‘士別三日則當刮目相對’ (사별삼일즉당괄목상대)라는 문구를 다시 기념으로 써달라고 하기에 그 자리에서 다시 써준 일이 있다.

이렇게 좌충우돌 무작정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부대끼다가 문득 내 장래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 공산주의 서적들을 공부하려고 했다. 나는 공부를 보다 능률적으로 하기 위해 예전에 고학할 때의 생활방식을 되살려 생쌀을 먹고 잠을 조금씩 자면서 책을 읽었다.

내가 공산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안 심 교장이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지 말고 마르크스주의 책을 골라 읽으라고 조언하여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스탈린의 『레닌주의의 기초』,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등을 읽었으나, 이해도 안 되고 투자한 시간에 비해 별 소득이 없었다.

생식을 5개월쯤 했는데, 그만 적리에 걸려 고생하다가 시중에서 흔하게 나돌던 미국 약 다이아진을 먹고 이내 고쳤다. 겨우 적리를 다스리고 나자 이번에는 학질이 도지고 말았다. 전차에서 덜덜 떨고 있자 소련군 장교가 다가와서 왜 떠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세포위원장 중에는 사동탄광 병원의 원장도 있었는데, 회의에 참석했다가 내가 앓는 걸 보고는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주사를 놔주었다.

대개 주사 한 방으로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주사를 한 대 맞고는 깨끗이 나았다. 훗날 소련 유학중에 말라리아가 재발했으나 그곳에서 완전히 고칠 수 있어서 그 병으로는 다시 병원을 찾지 않게 되었다. 나는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노어 공부도 시작했다. 구역 당에서는 학교의 당 책임자라고 하여 나에게 여러 가지 과업을 주었다.


그 과업을 다 수행하자면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가능한 한 충실히 일했다. 구역 당 부위원장은 세포위원장 모임에서 때로 나를 좋게 평가하는 발언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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