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22회]
  • 관리자
  • 2010-06-04 10: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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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여름, 서울에서 열리는 식산은행 주최의 전조선 주산경기대회에 나갈 3명의 대표 중에 내가 3학년 때에 이어 또 다시 뽑혔다. 그런데 대회를 얼마 앞두고 그만 국수를 잘못 먹고 심한 식중독에 걸렸다. 그때는 기차통학을 하지 않고 평양의 형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지도선생이 걱정이 되어 집으로 찾아왔다. 치료도 제대로 못한 채 나흘간이나 앓고 있는 나를 보고 선생은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그 몸으로 대회에 나가는 건 무리다. 아무래도 이번엔 다른 애를 출전시켜야겠다.” “선생님, 그래도 제가 대회에 나가야 합니다.” “ 아직도 앓고 있지 않느냐? 시합보다 몸이 더 중하니 좀 더 쉬도록 하거라.”

그러나 나는 대회에 불참할 수가 없었다. 내가 출전하겠다고 끝까지 고집하자, 지도선생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후보를 한 명 데리고 갔다가 네가 출전할 수 없으면 대신 내보내는 걸로.” 대회에는 참가하게 되었지만 몸이 다 나은 건 아니어서 나는 서울로 가는 길에 몹시 고생했다.

기차 안에서는 머리가 울리고 눈앞이 어질어질하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선생은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따로 데려가 커피를 사주면서, 마시면 정신이 맑아질 것이라고 했다. 맛이 씁씁하고 그러면서도 뒷맛이 뭔가 야릇한 커피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튿날 일어나서도 머리가 울리고 이명이 들릴 정도로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서울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내 실력이 후보보다는 월등하여 비록 아픈 몸이기는 해도 내가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생한테 내가 경기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할 수 있겠니?”

“해보겠습니다.” “좋다. 해보자.” 조반을 먹는 등 마는 등 하고 경기장으로 나가는데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웠다. 경기에 참가하기 전에는 늘 흥분이 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픈 데에 신경을 쓰다 보니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빨리 시합을 끝내고 집에 가 눕고 싶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나는 이 시합에서 종합우승을 했다. 6개 종목에서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만점을 받았던 것이다. 이 우승은 그 후 나의 생활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우승을 계기로 나는 사람의 정신을 흥분시키는 것은 육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신을 강화하려면 육체를 약화시켜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식사를 거르고 잠을 덜 자는 연습을 했다. 생쌀을 먹고 단식을 자주 하며 겨울에는 냉방에서 자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도서관에 더 자주 나가 책을 읽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식에 굶주렸던 나는 심리학, 논리학, 윤리학 관련 책들을 마구 읽어나갔으며 문학책도 감동 깊게 접했다. 톨스토이의 『부활』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등을 그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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