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41회]
  • 관리자
  • 2010-06-04 11: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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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로는 조금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양심적으로 살아 왔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내 가족과 내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이 세 가지 길은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유리한지를 확정짓기는 어려웠다. 내 성격으로는 제3의 길, 즉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김덕홍을 만나 정세를 설명해주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독약을 구해오도록 했다. 얼마 후 김덕홍은 독약을 구해다주며 죽는 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형님은 주체철학을 창시하여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김일성 부자의 이름으로 된 많은 글을 써준 비밀의 체현자인데다 국제비서라는 가장 중요한 요직을 오랫동안 유지한 핵심간부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만일 형님이 자살을 할 경우에 가족들이 정말 무사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공연히 반역자라는 누명이나 쓰기 쉽습니다. 앞으로 남한을 주체로 하여 우리 민족이 통일될 것은 틀림없는데, 이제 와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보다는 오히려 남쪽과 손을 잡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나도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김덕홍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이 더 굳어지는 것 같았다. 이왕 목숨을 버릴 바에는 남쪽 사람들과 연계를 맺고 싸우다가 죽는 것이 북한동포들을 구원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김덕홍은 남쪽과 연계를 갖는 문제는 자기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했다. 남으로 간다는 결심은 섰으나 고민은 계속되었다. 평생의 발자취와 가족을 남겨둔 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 괴로움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내가 남으로 가버리면 그 동안 영예와 행복을 누리며 살던 내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반역자 가족을 몰리게 될 뿐만 아니라 별로 도움도 주지 못한 친척들에게까지 막대한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주게 될 게 뻔했다.

그러나 내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양심이 자꾸 나를 남쪽으로 떠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96년 8월 말, 나는 「조선문제」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남북관계에 관한 내 입장을 밝히고, 그에 근거해서 김덕홍이 우리의 망명을 남측과 교섭하도록 하기 위해 쓴 것이었다. 글의 핵심은 전쟁을 막고 김정일 체제를 최단기간 내에 붕괴시키기 위한 전략전술을 밝히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제대로 투쟁하기만 한다면 5년 이내에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고 조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결정적 우월성은 경제적 우월성과 국제적 연대성 우월성이다. 그런 만큼 남한은 미국과 긴밀한 협조하에 북한의 남침도발 책동을 저지·무마시키는 한편, 경제가 파괴되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는 방법을 통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신의 개인독재를 버리려고 하지 않은 만큼 개혁·개방으로 나설 수 없으며, 따라서 개인독재를 유지한다는 조건하에 부분적으로 경제개혁을 실시하는 것은 오히려 김정일 정권의 명백을 연장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체제를 하루빨리 붕괴시키는 데 대북전략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에 식량과 의약품등을 적극 원조하여 북한주민들의 불행과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한편, 북한의 경제적 자립성이 강화되도록 해서는 안 되며 특히 빈사상태에 있는 군수공업이 끝내 파탄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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