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40회]
  • 관리자
  • 2010-06-04 11: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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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보다 큰 나를 위해. 나는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름의 결단을 내리기 위해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을 계속 추종한다는 것은 역사와 민족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죄과를 범하는 것임이 명백했다. 나는 철이 들 때부터 이제껏 남이 오해할 만한 행동은 더러 했지만 양심을 저버린 일은 전혀 한 적이 없었다. 김일성과 김정일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1980년대까지는 사실 몇 가지 문제에 대해 그들과 의견을 달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을 충심으로 도와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 후 90년대 들어서면서 나의 정신적 고민은 점점 커졌지만 내 입장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으며, 죽는 것보다는 그래도 살아남아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인민들을 무더기로 굶겨죽이면서도 전쟁준비에만 몰두하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으며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정일이 한국에 투항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김정일로서는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기 전에 전쟁을 일으키는 길밖에 없을 것 같았다.

또 대남사업 일꾼들의 말을 들어보면, 남한에 있는 지하당 조직의 힘은 막강하며, 게다가 운동권 학생들을 비롯하여 남한의 반체제세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또 군부지도자들은 미군이 남아 있는 조건에서도 전쟁을 하면 북의 승산이 확고하다는 것이었다. 군부지도자들은 지금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일으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했다. 동족상잔의 전쟁이 가져올 엄청난 민족적 비극에 대해 생각할수록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은 북한 통치자들로부터 완전히 멀어졌으며, 그들을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변했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내 앞에는 세 가지 길이 있었다. 첫째는 공공연히 반김정일 기치를 내거는 것이었다. 이것은 언뜻 용감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개죽음을 당하는 무모한 길이었다. 다음은 계속 가면을 쓰고 기회를 엿보는 것이었다. 이 무렵의 재단사업(외화벌이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거액의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확고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중앙당 부서로서 직접 외화벌이를 하는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체사상 대외선전을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하다 보니 국가보위부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다. 한번은 덕천탄광에서 화물차들이 타이어가 없어 운행을 못하고 있다고 해서 5만 불이 넘는 돈을 들여 타이어 200짝을 사다주었다. 그리고 곤란을 겪고 있는 중앙당 일꾼들과 국가보위부 일꾼들의 생활을 적극 도와주었다. 그러다 보니 당과 국가의 중요기관들인 우리와 긴밀한 연계를 맺으려고 경쟁적으로 달라붙었다.

나는 당의 지도사상을 담당한 비서로서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비서로서 대외활동에 유리한 위치에 있고, 또 재단사업을 통해 귀중한 외화까지 적지 않게 벌게 되면 내쪽의 영향력은 간단히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나로서는 그토록 유리한 지위는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김정일을 반대하여 싸울 의향을 내비치면 나의 모든 벗들은, 내가 김정일에게 계속 머리를 숙이면서 나의 유리한 지위를 활용하여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해가면서 때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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