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1회]
  • 관리자
  • 2010-06-04 11: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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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15일은 해방 50돌이 되는 날이었다. 기념행사를 함흥에서 열기로 하여 간부들이 모두 기차로 떠나고, 나와 양형섭만 남아 남한에서 오는 학생대표를 마중하는 환영대회에 참가했다. 우리는 그 행사를 마치고 나서 밤차로 함흥으로 갈 예정이었다. 나는 남한에서 온 두 학생을 환영해주었다. 그러나 내 양심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과 악수를 하면서도 이 어린 학생들을 속이고 있구나 하는 죄책감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남한의 청년학생들이 북한의 실정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차고 자유가 없어 감옥과 같은 북한을 굳이 찾아올 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청년들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그들이 이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사회주의와는 인연이 먼 전체주의와 봉건주의가 결합된 현대판 봉건사회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독일에 있는 송두율 교수와 남한의 소설가 황석영과도 만난 적이 있다. 송두율 교수에게는 주체사상의 진수를 알려주려고 시도했으나, 북한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말해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사실 북한당국이 그를 신뢰하는 차원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들의 나쁜 목정에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그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을까. 김용순은 나에게 송두율 교수를 교양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송두율은 주겠다는 것인지 달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미치광이여서 다른 사람이 상대하기가 어렵소. 황 비서께서 좀 영향을 주어 그의 머리를 고쳐주시오.” 김용순과 통일전선부 일꾼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안다면, 송두율 교수 본인은 뭐라고 말할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나는 또 황석영 씨를 위해서 비교적 실력 있는 제자들을 파견해 그에게 주체사상 강의를 해주도록 했다.

그러나 역시 그것으로 그칠 뿐, 그에게 북한의 본질을 인식시켜 줄 수는 없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북한의 청소년들을 저들의 정신적·육체적 노예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한의 청년학생들까지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협잡꾼들을 총동원하는 하편 남한의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이 거기에 걸려 희생되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말해주지 못한 게 한스럽다. 나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필경 이 아픔을 북한이 변하지 않은 한 고쳐질 수 없는 불치의 병으로 남을 것이다.

청년학생들이 갖고 있는 좋은 점은 현실적인 악에 오염되지 않아 순결한 마음으로 이상을 추구한다는데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을 너무나 모르다 보니 사악한 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북한의 통치자들은 말로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건설하고 청년학생들의 희망을 꽃피운다고 하지만, 질제로는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개인을 우상화하고 정권을 세습해가며 이 땅의 북반부를 생지옥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들의 그 허황된 정책은 인민들을 무더기로 굶겨죽이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대량살육무기를 만드는가 하면, 청년학생들에게 수령을 옹위하는 총폭탄이 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의 말과 실천이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남한의 소위 좌경 친북학생들을 북한에 들여보내 한 달쯤 생활하고 돌아오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임수경의 경우처럼 한두 명을 속일 수는 있어도 1~2천명이 동시에 들어가 여기저기 흩어져 생활하게 되면, 북한의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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