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103회]
- 관리자
- 2010-06-04 11:05:48
- 조회수 : 1,746
1984년, 나는 김일성을 수행하여 중국을 방문해 당시 총서기였던 휴야오방과 원로 덩샤오핑을 상대로 회담한 적이 있었다. 김일성은 중국측에 대해 특별히 원조를 요청하지는 않았다. 다만 북한의 정세와 대남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한편 미국의 태평양정책을 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덩샤오핑은 여전히 명석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맑았으나 귀가 어두워서 후야오방이 그의 귀 가까이에다 큰 소리로 말해주곤 했다. 김일성이 나를 수행하도록 한 것은 새로운 국제비서를 중국간부들에게 소개하려는 목적인 듯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중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어서, 국제비서가 된 후로도 중국과의 친선을 더욱 다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온 사실을 김일성은 알고 있었다. 김일성을 수행하여 중국 정부요인들의 얼굴을 익힌 나는, 다음해 국제비서로서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던 서안을 감명 깊게 돌아보았고, 후야오방 총서기와 회견도 하고 그가 마련한 연회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도 내 관심은 온통 중국이 실시하고 있는 개혁·개방정책을 꼼꼼히 살펴보는 데 있었다.
중국의 주요 지도자의 한 사람인 차오스와 나는 이미 서로 안면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5년 후에는 중국이 많이 달라져 있을 테니 그때 다시 꼭 방문해달라고 권했다. 5년 후가 아니라 당시에 중국이 이미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난 중국인들은 모두 자신감에 차 있었고, 어딘지 활기가 넘쳤다. 중국에서 돌아온 나는 중국의 개혁정책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김일성 부자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북한도 하루빨리 개혁·개방으로 나가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받았다. 나는 중국이 제2의 혁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과, 덩샤오핑이 위대한 공적을 쌓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는 틈틈이 국제부 요원들과 주체사상연구소 연구원들에게 변화하는 중국의 실상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정신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나는 주체사상 대외선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위해 주체과학원 청사를 건립해 줄 것을 김정일에게 요청했다. 나는 이미 어느 조용하고 아늑한 골짜기를 새 청사부지로 점찍어 둔 터였다. 그곳은 청사가 있는 평성시의 유학생 기숙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김일성이 그 부근에 있는 과학원을 현지지도하면서 청사부지로는 마땅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장엽은 왜 이런 산골에 주체과학원을 세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더 좋은 자리를 구해보도록 하라.” 김일성의 말을 전해들은 나는 평양 만경대로부터 멀지 않은 용악산 국립공원 아래에 있는 땅을 건립부지로 추천했다. 그곳은 경치가 수려해 여러 기관에서 앞 다투어 청사 등을 짓겠다고 나섰으나, 김일성이 승인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나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김일성이 좋은 부지를 추천하라고 해서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
“그 자리는 내가 특별히 눈여겨보고 있던 자리요. 정말 좋은 자리지요.” 라고 하면서 선선히 허락해주었다. 게다가 김정일도 주체과학원 청사를 잘 짓도록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1987년 말쯤에 주체과학원의 새 청사가 완공되었다. 준공식에는 김일성도 참석하여 기념촬영을 하는 등 과학원의 관리운영에 필요한 많은 배려를 약속했고 또 계속하여 지원해주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중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어서, 국제비서가 된 후로도 중국과의 친선을 더욱 다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온 사실을 김일성은 알고 있었다. 김일성을 수행하여 중국 정부요인들의 얼굴을 익힌 나는, 다음해 국제비서로서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던 서안을 감명 깊게 돌아보았고, 후야오방 총서기와 회견도 하고 그가 마련한 연회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도 내 관심은 온통 중국이 실시하고 있는 개혁·개방정책을 꼼꼼히 살펴보는 데 있었다.
중국의 주요 지도자의 한 사람인 차오스와 나는 이미 서로 안면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5년 후에는 중국이 많이 달라져 있을 테니 그때 다시 꼭 방문해달라고 권했다. 5년 후가 아니라 당시에 중국이 이미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난 중국인들은 모두 자신감에 차 있었고, 어딘지 활기가 넘쳤다. 중국에서 돌아온 나는 중국의 개혁정책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김일성 부자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북한도 하루빨리 개혁·개방으로 나가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받았다. 나는 중국이 제2의 혁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과, 덩샤오핑이 위대한 공적을 쌓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는 틈틈이 국제부 요원들과 주체사상연구소 연구원들에게 변화하는 중국의 실상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정신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나는 주체사상 대외선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위해 주체과학원 청사를 건립해 줄 것을 김정일에게 요청했다. 나는 이미 어느 조용하고 아늑한 골짜기를 새 청사부지로 점찍어 둔 터였다. 그곳은 청사가 있는 평성시의 유학생 기숙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김일성이 그 부근에 있는 과학원을 현지지도하면서 청사부지로는 마땅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장엽은 왜 이런 산골에 주체과학원을 세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더 좋은 자리를 구해보도록 하라.” 김일성의 말을 전해들은 나는 평양 만경대로부터 멀지 않은 용악산 국립공원 아래에 있는 땅을 건립부지로 추천했다. 그곳은 경치가 수려해 여러 기관에서 앞 다투어 청사 등을 짓겠다고 나섰으나, 김일성이 승인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나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김일성이 좋은 부지를 추천하라고 해서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
“그 자리는 내가 특별히 눈여겨보고 있던 자리요. 정말 좋은 자리지요.” 라고 하면서 선선히 허락해주었다. 게다가 김정일도 주체과학원 청사를 잘 짓도록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1987년 말쯤에 주체과학원의 새 청사가 완공되었다. 준공식에는 김일성도 참석하여 기념촬영을 하는 등 과학원의 관리운영에 필요한 많은 배려를 약속했고 또 계속하여 지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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