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21회]
  • 관리자
  • 2010-06-04 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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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상업학교에서도 미술, 음악, 체조과목을 따라가느라고 바빴다. 도시의 학생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취직을 눈앞에 둔 상업학교 학생들이라서 그런지, 그들은 시험공부를 몰아서 하는 습관이 배어 있었다. 그 애들은 학기말 시험이 다가오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으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나의 1학년 1학기 성적은 50명 중 30등이었다. 이 성적은 예상외였고 또 부끄럽기도 한데다 무엇보다도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 없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보여드렸더니 당신께서는 오히려 덤덤하게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받아 넘겼다.

“너는 금방 따라갈 수 있을 게다. 걱정할 것 없다.” 여름방학 동안 나는 밑바닥 성적이던 주산을 주로 연습했다. 개학을 하고 나서 나는 선생으로부터 주산 실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2학기 성적은 22등으로 여덟 계단을 뛰었다. 그러나 주산은 상당한 진전이 있어 학급에서 1,2등을 다투게 되었다.

주산이라도 1등을 하고 싶어서 나는 주산 서클에 들어갔다. 그 덕분에 방과 후 주산연습을 맘껏 할 수 있었다. 나는 장차 평양상업학교를 대표하는 주산선수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학교는 전국적으로나 만주에까지 주산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전국대회에서는 5년 연속 우승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주산 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상당히 높은 학교였다.

3학년 때 나는 교내대회에서 우승을 했는데, 그 소식이 평양상공회의소가 발간하던 신문에 발표되었다. 그즈음 서울에서는 전국대회가 1년에 두 차례 열리고 있었다. 한 번은 서울고등상업학교 주최로 진행되었고, 다른 하 번은 식산은행 주최로 열렸다. 학교대표로 뽑힌 나는 서울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교내대회에서 이긴 상급생에게 불러주기 결승전에서 지고 말았다.

나는 겁이 많고 대담하지 못한 데 패인이 있다고 분석하고는 정신수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신수양에 필요한 책을 구하려고 평양도서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도서관에서 나는 중학교에 다니던 보통학교 동창생들을 만났다. 그 애들은 대학진학 시험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자주 온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의 태도가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보통학교에 다닐 때 나와 그들 간에는 실력 차이가 컸고 또 그들이 내 재능을 인정해 줬었는데 오랜만에 만나서는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주산 선수가 되어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상업학교 자체를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큰 희망을 안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애들은 보통학교에 다닐 때는 실력이 보잘것없었는데, 중학교를 다니면서 보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처음 몇 번은 그들의 건방진 태도에 기분이 나쁘다가, 어느 순간 깨닫는 바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남의 돈 계산만 해주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생각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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