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회]
  • 관리자
  • 2010-06-04 10: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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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를 찾아온 그 인사는 물론 대사관 직원들까지도 이제는 알 때가 되었다면서 한국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대사관 직원들은 우리에게 남한사회의 다양함에 대해 말해주면서 우리가 실망하지 않도록 매우 세심하게 마음을 써주었다.

앞으로 서울에 가서 예기치 못한 일에 부닥치더라도 절대 신경 쓰지 말라, 또 어차피 조국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려고 왔으니 열심히 그 일만 하라는 식으로. 나는 오랫동안 사상가로서 일해 왔다. 때문에 사상에 대해서는 내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이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동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칭 진보적이라고 하면서 그저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비난하는 말들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다 두려워하는 김정일까지도 무시하고 떠나왔는데, 김정일이 통치하는 북을 추종하는 자들을 두려워했다면 나는 아예 북을 떠나지고 않았을 것이다. 우리, 나나 김덕홍이 두려워하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의 나약함이며 혹여 그 마음을 동정한 나머지 큰 의리를 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일 뿐, 적이라면 그 어떤 적도 두렵지 않았다.

필리핀의 시아존 외무장관은 4월 1일, 나와 김덕홍의 필리핀 체류와 관련하여 한국이 중국측의 ‘1개월 체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믿고 있다며 언급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입장을 살려주기 위해 한 달을 채우는 것이구나 하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맵고 짠 음식보다는 빵 종류나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것은 1987년부터 나를 괴롭혀온 마성후두염에 과일 특히 포도가 좋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고부터였다. 의사의 처방을 따르려다 보니 그만 입맛이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주체철학의 기본문제」원고를 개작하는 일도 끝마치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다음 서울에 도착한 즉시 발표할 인사말도 써놓았다. 드디어 4월 20일 오전 일찍 필리핀을 떠나 그날 오후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운 남녘 형제들 앞에서 나는 도착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이번에 갈라진 조국의 북을 떠나 남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나의 청원을 허락해주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주며 따뜻이 맞이해 준데 대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충심으로부터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나를 뜨겁게 동포의 정으로 끌어안아 주고 있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나의 문제를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해 준 중국과 필리핀 정부에도 감사를 드린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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