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79회]
  • 관리자
  • 2010-06-04 10: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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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문서정리실의 부실장과 선전부 이론 선전과장을 조수로 쓴 것은 글에 대한 발언권을 가진 집단의 반감과 질투를 사전에 무마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김일성의 고종사촌 동생인 김용원이 사냥을 했다고 하여 복귀되고 문서실 부실장은 김일성 처남의 패거리에 밀려 지도원으로 강직되어 문서정리실과 대립되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처음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바람에 결국 새로운 이론을 실현하는 데 더욱 불리한 조건이 조성되고 말았던 것이다. 김정일은 내 글을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김영주는 반대했다.

김정일이 내 글을 지지한 것은 글을 제대로 이해해서가 아니라 삼촌 김영주를 공격하여 김일성에게 자신이 충직하다는 걸 보여주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교조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김영주의 사상일 낡았다는 걸 알리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김정일에게는 이론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를 실시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한편으로 그는 모든 것을 자기생각에 복종시키려 하고 있었다.

김정일과 김영주의 권력투쟁은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동생보다 아들을 선택한 듯한 인상을 주자, 김영주는 병이 들어 누워버렸다. 결국 ‘식물성 신경 부조화증’이라는 병을 얻어 주을 요양소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김영주가 요양을 간 후 얼마 있다가 김정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삼촌이 자꾸 주체사상을 반대하는 데, 황 선생이 가서 설복을 시켜주시오.” 나는 주을요양소로 김영주를 찾아가 사흘 동안 같이 있으면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한 교조주의적 이해가 잘못되었고 인간중심의 원리가 옳다는 것을 역설했다.

“사람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에서 결정적인 것은 사람 자신입니다. 그 다음이 객관적 요인입니다.” “그렇지 않소. 인간은 객관적 조건에 반작용하는 자유밖에 부여 받지 못했소. 즉, 호랑이가 다가오면 그 즉시 사람의 뇌수에 반영되어 도망치게 되는 것이오.” “그렇다면 호랑이 말이 나왔으니 소설이긴 하지만 『서유기』의 예를 들어봅시다. 현장법사의 손오공이 호랑이와 맞닥뜨렸을 때 호랑이를 보고 같이 인식했지만 반응은 각기 달랐습니다.

현장은 호랑이를 이길 능력이 없어 겁을 먹고 피하려고 한 반면, 손오공은 호랑이를 때려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을 생각을 하고 호랑이가 나타난 걸 오리혀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볼 때 인간은 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객관적 조건에 의해 그의 행동이 규정되는 면보다도 인간이 객관적 조건을 이용하여 자기요구를 실현해 나가는 자주적 존재라는 점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주는 겨우 납득이 된 듯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철학에 있지 않다는 것이 다음의 말에서 드러났다. “집안에서는 아마도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우기로 결정한 것 같은데....” “모스크바에 계실 때부터 철학을 좋아했는데, 이제 정치는 김정일 동지에게 맡기고 나와 함께 주체철학을 연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철학연구는 조국통일보다도 더 가치가 있습니다. 조국통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 테지만, 주체철학을 정립하는 일은 인류의 운명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고민에 빠진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나는 그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요양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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