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72회]
  • 관리자
  • 2010-06-04 10:54:41
  • 조회수 : 1,676
대홍수

1967년 8월, 평양시내가 잠기는 대홍수가 났다. 100년 만에, 아니 유사 이래 처음 있는 대홍수라고들 했다. 나는 합장강(김일성종합대학 부근을 돌아 대동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강)제방이 무너질 것 같다고 하여 학생들을 인솔해 제방 막는 작업을 했는데, 중앙지휘부에서 위험하니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사무실로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꽝 하는 소리가 났다. 합장강 제방이 터지는 소리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우리는 물귀신이 될 뻔했던 것이다.

합장강 제방이 터지자 평양은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농장에 나가 일하던 학생들의 희생된 것 같아 군대에 요청하여 밤중에 수륙양용차를 타고 학생들을 찾으러 나섰다. 그러나 농장은 온통 물에 잠겼고 학생들이 숙식하던 집의 지붕만 보일 뿐이었다. 물이 빠져야 시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지만 그냥 철수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희생된 줄 알았던 학생들이 그동안 기르던 돼지를 한 마리씩 메고 돌아왔다.

그들이 살아 있는 걸 봤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서로의 흥분이 가라앉은 다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물이 농자에도 찰 것 같아서 돼지를 메고 피신했다가 다른 길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그들이 너무도 고마워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격려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홍수 피해는 늘어났다. 밤에 모란봉에 올라가보니 물에 떠내려 오다가 능라도의 나무 꼭대기를 붙잡고 버티던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이튿날 사무실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식사를 하려고 집에 갔더니 보통강물이 거꾸로 흘러, 내가 사는 아파트도 물에 잠겨있었다. 물 위로 사람들이 계속 떠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다리에 그물을 드리우고 있었으나 다리에도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다리 위에서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어떤 여자가 부유물에 의지한 채 떠내려오다가 다리 위의 사람들을 보고 아이를 받아달라면서 아이만 위로 쳐들고 자신은 다리 밑으로 들어가고 마는 것이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그때 똑똑히 보았다. 나는 사회가 계약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다면 사랑도 계약의 산물이라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날의 광경을 회상하곤 했다. 평양의 홍수 피해는 너무도 컸다. 백화점도, 화력발전소도 모두 물에 잠겼다. 평양은 온통 떠다니는 부유물 천지였다. 음료수 병이며 부엌용품들이 꼴사납게 떠다니고, 보통강물의 범람으로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1층은 물에 잠겼다.

이 아파트는 당과 국가의 주요간부들이 사는 곳으로, 우리 집은 2층에 있었다.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위험하니 4층으로 대피하라고 했으나, 아버지는 “물이 2층까지 올라온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텐데 나 혼자만 살겠다고 4층으로 올라가겠느냐”면서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