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65회]
  • 관리자
  • 2010-06-04 10: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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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당 일꾼들로 하여금 군중 속으로 들어가 고락을 같이하면서 군중에게서 배우고 가르쳐, 당의 정책을 관철하는 데 그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할 수 있도록 했다.

김일성은 이 방법을 ‘청산리방법’이라 불렀다. 또 이 방법을 공장관리에도 도입하게 하여 ‘대안의 사업체계’라고 불렀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나중에 ‘당 비서 독제체계’로 변질되었지만, 그것이 나온 초창기에는 지도간부들의 관료주의와 주관주의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즉, 지도간부들과 생산자가 합심하여 생산과 건설을 힘있게 밀고 나가도록 했던 것이다.

나는 김일성의 이같은 창조적 활동을 있는 힘껏 지지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이때부터 나는 군중노선을 기초로 하여 주체사상을 더욱 체계화하려고 생각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노동당에서 내건 지도사상의 내용을 주체사상과 군중노선 두 가지라고 여겼으나, 나는 이 두 가지를 합쳐 ‘주체는 곧 군중’이라는 관점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큰 나라들을 무조건 숭배하고 자기 나라를 깔보는 사대주의와 큰 나라의 것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교조주의를 반대하면서,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일성은 주체는 혁명이기 때문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혁명의 요구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혁명은 운동이기 때문에 주체라는 용어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말 대신 인민으로 고쳐 쓰기로 했다. 또 사대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한다는 것보다도 대국들로부터의 간섭과 지배를 반대하고, 주체인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을 고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마르크스주의를 구체적으로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창조적 입장과 함께,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자주적 입장을 지키는 것을 주체사상의 기본요구의 하나로 덧붙이게 되었다.

그 후 김일성은 자주적 입장과 창조적 입장을 기본정책으로 채택하고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로 기본노선을 정식화했다. 이것이 주체사상의 기본내용이며, 이 기본내용은 전적으로 김일성이 당시 북한의 실정에 맞게 내놓은 것이었다. 김일성은 체계적인 이론은 중시했다. 그리고 실천에 필요한 이론을 나름대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다.

‘당 사업은 사람과의 사업이다.’ ‘교육사업을 모든 사업에 앞세워야 한다.’ 1962년 10월, 나는 처음으로 제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뽑혔다. 김정일은 1959년 1월 모스크바에서 가깝게 지낸 뒤로 나와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그는 집에 가서도 나를 높이 평가하는 말을 자주 했던 모양이다. 김정일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나려고 중앙당 사무실로 찾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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