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33회]
  • 관리자
  • 2010-06-04 10: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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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문을 열고 나가봤더니 창고 문이 열려 있었는데, 안에는 이부자리 한 채와 소련군 장교용 겨울 외투가 한 벌 있었다. 소련병사들이 그것들을 훔쳐다가 우리 창고 안에 두었던 모양인데, 아마도 그 전날 밤 수색대 병사들이 그 병사들을 잡으러 다니다가 그 같은 소동을 피운 것 같았다. 우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창고 안의 물건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가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마침 이불이 부족한데다 나도 외투가 없었기 때문에 외투는 검정색으로 물을 들여 내가 입었고, 이불은 함께 덮었다. 평양상업학교는 이 교사에서 1945년 겨울을 나고 1946년 여름까지 있었다. 그즈음 나는 일본군대에 학도지원병으로 갔다가 돌아와 증산군에서 인민하교 교원으로 있는 송한혁을 데려다가 같이 일하게 되었다.

나와 송한혁은 그때까지 아무 당에도 입당하지 않았으나, 교원 강습에 참가하여 강의도 듣고 공산주의 책을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왕에 당원이 될 바에는 신민당보다 공산당에 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 안면이 있는 공산당원에게 입당할 수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노동 연한이 얼마나 되는가? 공산당에 왜 입당하려 하는가?” 그는 마치 심문하듯이 꼬치꼬치 묻고 따지는 것이었다. 나와 송한혁은 공산당에 입당하겠다고만 하면 그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만 뜻밖의 불친절에 입당을 단념했다. 그렇다고 신민당에 입당할 생각도 없었다.

송한혁이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는 경제전문학교로 개편되었고, 경제과 경영과, 경리과 3개과로 나눠지면서 남녀공학제로 바뀌었다. 우리는 그동안 정들었던 교사를 새로 창립되는 김일성대학에 내주고 동평양 문수리에 있는 사범학교의 부속학교 건물로 옮겨가게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이삿짐을 싸서 송한혁과 함께 연신 미끄러지면서 달구지를 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새로 이사한 건물은 전에 사용하던 교사보다는 못했으나 인민학교 교사치고는 그래도 깨끗한 편이었다. 나는 숙직실에서 제자 윤재용과 함께 자취를 했다. 송한혁이 결혼하여 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교사들 중에서 집이 없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지키는 일은 내가 도맡아야 했다.

자취라야 음식을 매번 하는 것도 아니고 통강냉이를 삶아서 학생들과 함께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곳에도 도둑이 자주 들었는데, 심지어 밤중에 사람이 자고 있는 숙직실에 들어와 벗어놓은 옷까지 훔쳐갈 정도였다. 나는 선배가 준 만년필과 윤재용이 가져다준 옷도 잃어버렸다.

도둑들은 또 학교의 유리까지 훔쳐가 골치를 썩였다. 그래서 하루는 축구선수들을 잠복시켜 놓았더니 두 놈이 걸려들었다. 놈들을 앞세우고 그들의 거점인 연못동을 찾아갔다. 그들은 낡은 창고에서 볏짚으로 이불을 대신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도둑질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더 이상 학교 유리를 빼가지 말라고 타이르고는 그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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