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45회]
- 관리자
- 2010-06-04 10:44:14
- 조회수 : 1,586
아내가 평양으로 떠날 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이 어떠한지를 뼈저리게 체험했다. 어쩌면 50면 뒤에 겪을 이 고통을 그때 이미 앞질러 맛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내와 헤어진 뒤로 학업에 전념했다. 그 시기에 ‘인식에서 실천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학위논문 초고를 끝내고 있었기 때문에 논문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안 하고 있었으나, 몇 가지 이론문제가 풀리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다.
그 하나가 헤겔의 변증법이었다. 그즈음 소련학계에서는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나는 학위논문을 핑계 삼아 학생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건의를 하여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헤겔 변증법에 빠져들었다. 헤겔의 『논리학』은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다 이해된다면서 해설서를 쓰고 있는데, 나는 해설된 책의 도움을 받으면서 읽어도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었다. 철학적 사고의 재능도 없으면서 공연히 철학연구에 뜻을 둔 게 아닌가 하고 은근히 두려움이 생겼다. 풀리지 않은 것 중의 또 한 가지는 철학강좌장의 특강내용이었다.
연구원 2년 과정이 끝나갈 무렵에 강좌장이 여러 시간에 걸쳐 특강을 했는데, 나는 겨우 절반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다. 노트를 해놓았지만 그걸 다시 읽어보아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나는 후배 연구원들을 위한 강좌장의 특강을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기는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학위논문에서 내가 또 염두에 둔 것은 이론과 실천을 어떻게 통일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강좌장은 실제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주장하는 것 같았다. 또 그의 성격이 변태적인 듯하여 평소에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와 헤어진다는 것은 서운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하는 시간을 내어 그를 찾아갔다. “조선에 나가서 철학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될까요?” 나는 특강에 대한 그의 주장을 묻지 않고 우회하여 그렇게 물었다. 그의 철학적 사고에 깊이가 있다면 천천히 의논할 작정이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부하는 게 좋겠지요. 하다못해 『자본론』1권만이라도 잘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나는 이 사람에게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미련 없이 그와 작별했다. 학위논문이 통과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논문개요를 심사위원들에게 돌리고 도서관에도 비치해야만 했다. 그 일을 하려면 우선 지도교수의 서명을 받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논문개요를 작성하여 오랜만에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논문개요를 읽어보더니 두어 글자 고쳐주고는 말했다. “내가 지도한 연구생 가운데 논문개요를 무수정으로 통과시킨 예는 당신이 처음이오. 당신 논문은 독창적인 사상을 담고 있소.” 나는 지도교수가 그때까지 전혀 지도를 해주지 않다가 미안한 나머지 과찬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논문의 개요가 간결하여 산뜻한지는 몰라도 논문 자체는 소련학자들이 발표한 논문들의 사상을 여기저기서 따다가 조립한 것에 불과하고, 독창적인 사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내 자신의 철학적 사고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 하나가 헤겔의 변증법이었다. 그즈음 소련학계에서는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나는 학위논문을 핑계 삼아 학생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건의를 하여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헤겔 변증법에 빠져들었다. 헤겔의 『논리학』은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다 이해된다면서 해설서를 쓰고 있는데, 나는 해설된 책의 도움을 받으면서 읽어도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었다. 철학적 사고의 재능도 없으면서 공연히 철학연구에 뜻을 둔 게 아닌가 하고 은근히 두려움이 생겼다. 풀리지 않은 것 중의 또 한 가지는 철학강좌장의 특강내용이었다.
연구원 2년 과정이 끝나갈 무렵에 강좌장이 여러 시간에 걸쳐 특강을 했는데, 나는 겨우 절반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다. 노트를 해놓았지만 그걸 다시 읽어보아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나는 후배 연구원들을 위한 강좌장의 특강을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기는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학위논문에서 내가 또 염두에 둔 것은 이론과 실천을 어떻게 통일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강좌장은 실제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주장하는 것 같았다. 또 그의 성격이 변태적인 듯하여 평소에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와 헤어진다는 것은 서운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하는 시간을 내어 그를 찾아갔다. “조선에 나가서 철학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될까요?” 나는 특강에 대한 그의 주장을 묻지 않고 우회하여 그렇게 물었다. 그의 철학적 사고에 깊이가 있다면 천천히 의논할 작정이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부하는 게 좋겠지요. 하다못해 『자본론』1권만이라도 잘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나는 이 사람에게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미련 없이 그와 작별했다. 학위논문이 통과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논문개요를 심사위원들에게 돌리고 도서관에도 비치해야만 했다. 그 일을 하려면 우선 지도교수의 서명을 받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논문개요를 작성하여 오랜만에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논문개요를 읽어보더니 두어 글자 고쳐주고는 말했다. “내가 지도한 연구생 가운데 논문개요를 무수정으로 통과시킨 예는 당신이 처음이오. 당신 논문은 독창적인 사상을 담고 있소.” 나는 지도교수가 그때까지 전혀 지도를 해주지 않다가 미안한 나머지 과찬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논문의 개요가 간결하여 산뜻한지는 몰라도 논문 자체는 소련학자들이 발표한 논문들의 사상을 여기저기서 따다가 조립한 것에 불과하고, 독창적인 사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내 자신의 철학적 사고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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