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90회]
- 관리자
- 2010-06-04 1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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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나를 다시 중앙당 안에 조직된 사상이론문제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했다. 아마 이것이 와전되어 내가 사상담당비서라는 소문이 내외에 퍼졌던 것 같다. 주체사상이 당의 지도사상인 만큼 주체사상을 담당한 비서가 사상비서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선전부는 김정일이 직접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선전비서가 아니었다.
주체사상연구소를 가동하려고 하자, 우선 중앙당에 소속된 사람들의 경우는 주체사상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주체사상을 제대로 선전하려면 당장 중앙당 일군들부터 주체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했다. 이미 당에서는 1년에 한 달 정도의 강습제도가 있어서 중앙당 소속원들도 중앙당학교에 들어가 사상이론 강습을 받고 있었다.
나는 김정일에게 중앙당 일군들의 주체사상 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보고하고, 그들이 중앙당학교에 들어가 한 달 동안 강습 받던 것을 중단시키고 주체사상연구소의 주관 아래 중앙당에서 주체사상 강습을 받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정일은 그 자리에서 승인했다. 나는 그 기회에 우선 주체사상연구소 일군들의 사상을 통일시킬 작정이었다. 그리하여 주체사상연구소의 핵심들을 모아 한 달 동안 강습시킬 강의원고를 함께 작성했다.
나는 김정일이 노리는 것은 수령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이지 주체사상 이론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령의 개인독재를 정당화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적당히 강조하면서 주된 초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두었다. 나는 강의원고 한 줄 쓰는 데도 모든 학자들의 의견을 묻고,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납득시키도록 했으며,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논쟁을 벌이도록 했다.
혼자 쓰면 5일이면 될 강연록을 토론하면서 쓰느라고 45일이나 걸려 작성했다. 그러면서 주체사상연구소 학자들은 더욱 긍지가 높아지고 이론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사람들에게 이론에 대해 아는 체하는 선전부와 문서정리실 직원들에 대한 학습지도를 맡기고, 비서들과 부장들의 학습조는 내가 직접 담당했다. 주체사상 강습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개인우상화와 개인독재를 강화하려는 통치자들의 요구를 무조건 지지하는 아첨분자들이었다. 그들은 주체사상을 보편적 진리로서 철학화하는 데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주체사상을 보편적 진리에 기초한 독자적 철학체계로 발전시키려는 나의 주장과, 계급주의적 입장에서 수령 우상화와 수령 개인독재를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아첨분자들의 주장 사이의 사상적 대립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김정일에게 아첨하여 특권적 지위를 지키려는 자들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나의 주체사상 이론을 음으로 양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독자적인 철학적 견해를 내놓을 만한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능력도 없었다. 그들 중에 제법 나서는 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김일성 서기실의 주수출신이었다. 그는 우리 서기들이 쫓겨난 뒤에 선전부에 들어가 소위 ‘216호실’을 담당한 부부장으로, 김정일의 문서를 만드는 사업으르 주관했다.
그는 한때 나를 매우 따랐으나 김정일에 직속된 선전부 부부장이 된 후로는 자신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에 금이 갈까 두려워 주체사상연구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주체사상연구소를 가동하려고 하자, 우선 중앙당에 소속된 사람들의 경우는 주체사상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주체사상을 제대로 선전하려면 당장 중앙당 일군들부터 주체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했다. 이미 당에서는 1년에 한 달 정도의 강습제도가 있어서 중앙당 소속원들도 중앙당학교에 들어가 사상이론 강습을 받고 있었다.
나는 김정일에게 중앙당 일군들의 주체사상 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보고하고, 그들이 중앙당학교에 들어가 한 달 동안 강습 받던 것을 중단시키고 주체사상연구소의 주관 아래 중앙당에서 주체사상 강습을 받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정일은 그 자리에서 승인했다. 나는 그 기회에 우선 주체사상연구소 일군들의 사상을 통일시킬 작정이었다. 그리하여 주체사상연구소의 핵심들을 모아 한 달 동안 강습시킬 강의원고를 함께 작성했다.
나는 김정일이 노리는 것은 수령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이지 주체사상 이론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령의 개인독재를 정당화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적당히 강조하면서 주된 초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두었다. 나는 강의원고 한 줄 쓰는 데도 모든 학자들의 의견을 묻고,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납득시키도록 했으며,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논쟁을 벌이도록 했다.
혼자 쓰면 5일이면 될 강연록을 토론하면서 쓰느라고 45일이나 걸려 작성했다. 그러면서 주체사상연구소 학자들은 더욱 긍지가 높아지고 이론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사람들에게 이론에 대해 아는 체하는 선전부와 문서정리실 직원들에 대한 학습지도를 맡기고, 비서들과 부장들의 학습조는 내가 직접 담당했다. 주체사상 강습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개인우상화와 개인독재를 강화하려는 통치자들의 요구를 무조건 지지하는 아첨분자들이었다. 그들은 주체사상을 보편적 진리로서 철학화하는 데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주체사상을 보편적 진리에 기초한 독자적 철학체계로 발전시키려는 나의 주장과, 계급주의적 입장에서 수령 우상화와 수령 개인독재를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아첨분자들의 주장 사이의 사상적 대립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김정일에게 아첨하여 특권적 지위를 지키려는 자들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나의 주체사상 이론을 음으로 양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독자적인 철학적 견해를 내놓을 만한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능력도 없었다. 그들 중에 제법 나서는 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김일성 서기실의 주수출신이었다. 그는 우리 서기들이 쫓겨난 뒤에 선전부에 들어가 소위 ‘216호실’을 담당한 부부장으로, 김정일의 문서를 만드는 사업으르 주관했다.
그는 한때 나를 매우 따랐으나 김정일에 직속된 선전부 부부장이 된 후로는 자신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에 금이 갈까 두려워 주체사상연구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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